[매일춘추] 마취의 미학

입력 2007-01-09 07:16:03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은 'Aesthetica'를 저술해 미학'(美學)을 학문적 분과로 등장시켰다. '미학'이란 말(aesthetics)말은 '느끼다'란 뜻의 그리스어 '아이스테나이'에서 유래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부정접두어 'an'을 붙이면 '마취'(Anaesthesia)라는 뜻이 된다는 점이다.

'마취'와 '미학'은 이렇게 언어의 탄생에서부터 묘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10여년전만해도 마취제는 꽤 고통이 있었다. 필자도 마취의 통증이 무서워 치아로 인한 통증이 그 보다 훨씬 심해지고서야 치과를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의사가 되고서도 수술을 앞둔 두려움에다 마취주사에 대한 공포까지 껴안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눈수술과 코수술을 같이 할때, 눈수술이 끝나고 나면 코수술 부위의 마취가 두려워 코수술을 포기하는 환자가 있을 정도였으니.... 아프지 않게 마취를 할 수 있다면, 수술하는 의사나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 얼마나 큰 축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즈음에 비디오로 본 미국 성형외과 의사의 수술 장면에서 얼굴의 넓은 부위를 마취하는데도 환자가 전혀 고통 없이 있는게 무척 감명 깊게 느껴졌다. 마침 미국 성형외과학회에서 무통마취에 대한 강좌가 있었다. 저건 꼭 배워야지 하는 마음에 수백만 원의 경비와 10일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후 약제의 발달과 경험의 축적으로 정맥마취로 인한 불편함이 생기지 않을 만큼의 적은 양으로도 수면마취나 무통마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하는 의사나 수술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마취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실로 '마취의 미학'이라 부를만 한 것이다.

마취주사를 찌를때 신음을 토해내며 흘리는 환자의 눈물을 지켜본 기억이 없는 의사들은 통증 없이 마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별로 감흥이 크지 않을 것이다. 20~30년 전 TV가 귀하던 시절에는 '여로'와 같은 인기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적잖은 공을 들여야 했다.

TV가 있는 집 아이들에게 온갖 아부를 해야 구석 자리나마 앉아 흑백 상자 속의 요지경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 불편없이 사용하는 것들도 그전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까. '마취'와 '미학'은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서로 그렇게 만만찮은 개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무상 M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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