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입사, 열심히 일했으나 지방 대학교를 나왔다는 점 때문에 한계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 창업에 뛰어들었고 그후 13년 동안 줄곧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직원 2명과 함께 시작했던 회사가 직원 320명에다 전국 8개 지역에 지사를 둘 정도로 성장했고 수출도 하고 있다.
LCD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주)에이텍의 신승영(辛承暎·50) 대표이사가 걸어온 길이다. 그는 1982년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LG전자에 입사, 품질검사·시스템 검사·기술 부문의 과장을 잇따라 거쳤으나 92년 회사를 떠났다. "열심히 일했음에도 지방대를 나왔다는 점 때문에 승진 등에서 차별을 느끼게 되면서 퇴직키로 했다."고 한다.
이듬해 초 퇴직금 1천만 원에다 지인들의 도움 등으로 5천만 원을 확보, 직원 2명과 함께 컴퓨터 수리 회사를 차렸다.
회사 확장의 기회는 97년에 왔다. 'LG 필립스 LCD'가 재고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LCD로 제품을 만들 것을 제의했고 이에 응했던 것. 국내 최초로 LCD 일체형 컴퓨터를 만들었고 LCD 모니터와 TV 사업에 까지 진출했다.
회사가 커지자 98년에는 부설 연구소와 생산공장까지 별도로 마련했다.
경영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더욱 열심히 일함으로써 이겨 나갔고 결국, 남들은 어렵다던 IMF가 급성장의 발판이 됐던 것.
아직까지 금융권 부채가 없는 상황에서 흑자경영을 계속 해오고 있으며 올 한해 매출액을 1천200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연공서열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유지, 사원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MBA에 들어갈 경우 학비를 지원하는 등 능력개발에 주력해 왔다.
어릴 때는 수학도였다. 영주에서 5남매 중 세째로 태어나 영주 안정초교과 영주중·고를 다니는 동안 줄곧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
대학 들어갈 때도 가족들은 수학을 전공하길 원했으나 사업가 꿈도 키울 수 있는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평생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던 게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구미 전자산업과 관련, "파주에 LCD 공장이 증설돼도 구미는 일정 수준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무엇보다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며 지역내 대학들을 통해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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