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는 늘 나를 매료시키고, 내게 영감을 준다. 환상과 영감의 생물인 경주와의 조우는 작가로서 행운이지만 정신의 고향을 갖게 되었으므로 한 자연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대구 출신으로 중편 '숲 속의 방'과 장편 '내 안의 깊은 골짜기' '청색시대' '가까운 골짜기' '미불'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강석경(53·여)씨가 '강석경의 경주산책'(열림원)을 펴냈다. 제목처럼 인간의 헛된 욕망과 열망을 털어내고, 바람 위를 산책하듯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이 한데 흐르는 경주를 사색하듯 돌아본 산문집이다. 25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수년 전부터 경주에 정착한 강씨는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나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온 회귀(回歸)"라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2000년 경주의 능에 관한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을 펴내기도 했던 강씨는 이번에는 경주의 곳곳을 둘러보며 글을 썼다. 경주의 원형적인 모습과 정신을 간직한 장소들을 발견하고, 그 장소들을 뛰어난 통찰력으로 살려내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맨다. 경주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들조차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곳들을, 강씨는 산책자가 되어 거닐고 감탄하고 있다. "존재의 불확실성에 방황하면서도 성년의 세월을 보내고, 세계도 돌아보고 뒤늦게 경주에 터를 잡은 것은 그야말로 뿌리로의 귀환이 아닐까…내게 고향이란 육신이 태어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계림로에서' 중)
또한 강씨는 시간의 냄새를 따라 용장골, 황룡사지, 안압지, 남산동 등을 산책하며 그곳의 자연과 역사, 향기를 애틋함과 설렘이 묻어 있는 글로 전한다. "꽃가루가 흘러가는 수면을 바라보니 못에는 나무뿐 아니라 하늘도 담겨 있다. 천삼백여 년의 유물만이 아니라 천 3백여 년 동안 지고 뜬 해와 달이 드리워 있고 별똥별도 묻혀 있다." ('안압지에서' 중) 그리고 산책하다 떠오르는 시와 글귀도 낭송하듯 적어 내려간다. 미추왕릉을 지나 걸어 가다가 만난 청설모 한 마리를 보고 김춘수 시인의 '흉노'를, 밤나무 숲을 걸어가다 붉은 석양을 만나고는 헤르만 헤세의 '잔디에 누워'를 읊조린다.
20여편의 글을 통해 경주 산책을 한 강씨는 "경주는 짓고 세울 것이 아니라 수도승처럼 비우고 비워야할 도시"라며 "누구나 마음을 연다면 감동은 경주 여기저기 널려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의 선험적이고 통찰력 있는 글과 함께 책을 읽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또 다른 매력은 책 표지부터 마지막장까지 텁텁해서 정겨운 먹 냄새를 풍기며 이어지는 그림들이다. 수십년째 경주에 살며 경주를 그려온 화가 김호연씨의 그림들이 강씨의 철학적 사색이 묻어나는 글과 조화를 이룬다. 경주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강씨는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고, 달팽이집 같은 일상에서 비켜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맞도록 그것이 민족의 고향으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털어놓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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