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 '봄의 향연'춘곤증 물렀거라

입력 2004-02-26 15:59:53

"아니, 한정식이라더니만 순전히 풀뿐이잖아".

음식맛이 좋다고 입소문이 난 한정식집을 찾아 나섰다.

헐티재를 넘어 청도군 각북면 용천사를 지나면 바로 길모퉁이에 자리한 갈색 지붕의 3층 건물 '비슬문화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 자리한 한식당 '아트 빌리지'. 한상 가득 차려나온 반찬이 15가지나 됐다.

그런데 생선조림을 뺀 나머지 반찬이 전부다 채소류였다.

"햄 없어요? 아님, 돼지고기라도 구워주든지…".

아이들의 불평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런데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하나씩 집어먹다 보면 어느새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경주 안강 밀양박씨 종갓집의 9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박말분(51)씨의 손맛이 음식맛을 내는 비결이다.

"17세가 되니 어머니가 제사 상 차리는 걸 가르쳐 주시더군요. 그때부터 어머니가 하는 방식대로 당연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쑥국, 돈나물, 봄동 무침, 열무김치…. 봄나물·채소로 차린 식탁이 겨우내 잃어버린 미각을 금방이라도 되살려 줄 것 같다.

박씨는 평소 집에서 먹는 음식을 그대로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맛은 없지만 고향 집에서 먹는 음식같은 토속적인 맛이 정감이 간다.

"봄이 되면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비타민의 부족때문이잖아요. 초봄에 먹는 봄나물과 채소는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을 보충해 주는 영양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박씨는 제 향과 맛을 지닌 제철 음식을 먹어야 맛이 있고 영양분도 풍부하다고 했다.

요즘은 나물도 온상 재배를 많이 하는데 이런 나물들에 양념을 해보면 금방 물이 나오지만 냉상은 그렇지 않고 아주 맛있다고 했다.

채식을 하는 게 몸에 좋다는 건 알지만 집에서 만들면 맛이 없어 식구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말하는 주부들이 적잖다.

그렇다면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내는 박씨의 요리 방법을 한번 따라해 보면 어떨까.

"쑥국을 끓일 때 멸치 육수를 쓰면 텁텁하고 비린내가 납니다.

명태 대가리로 육수를 내 들깨.콩가루를 넣어 끓이면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이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박씨는 봄에 나는 제피잎과 풋마늘로 저장식을 만들어 두면 내년까지 두고 먹어도 맛있다고 했다.

특이한 향으로 입맛을 돋워주는 제피잎을 고추장과 오양(약재), 감초, 계피를 달인 물에 버무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된다.

풋마늘은 소금에 약간 절였다가 고추장과 오양, 계피, 감초 달인 물에 식초와 설탕을 넣은 양념에 절여 먹으면 다른 반찬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다.

음식 맛을 내려면 양념도 좋아야 되지만 재료도 싱싱해야 한다.

박씨 대신 칠성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는 남편 유재업(46)씨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껍질을 벗겨놓은 도라지나 삶아놓은 고사리는 화공약품 처리해 놓은 것이 많습니다.

도라지는 원뿌리째로 사고 고사리도 마른 걸로 사 요리해야 맛있습니다".

유씨는 시금치도 잎이 잘고 단으로 묶어 파는 것이 값이 2, 3배 비싸지만 더 맛있다며 재료 값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음식 맛을 잘 내기 위해서는 소금도 중요하다.

굵은 천일염을 잘게 빻아 나물을 무칠 때 넣으면 훨씬 맛있다고 한다.

박씨는 식사 뒤에 먹는 구수한 숭늉은 찬밥을 이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평평한 알루미늄 쟁반에 물을 약간 붓고 찬밥을 얇게 펴 약한 불 위에 올려 돌려가며 누룽지를 만들어 냉동 보관시켜 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숭늉을 끓여 먹으면 구수한 맛이 속을 편하게 해준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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