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매미소리

입력 2002-07-23 14:08:00

한여름의 정취는 뭐니뭐니해도 매미 울음소리에 있다. 고향마을 담 모퉁이에 자리한 감나무 위거나 개울가에 열 지어 늘어선 미루나무 줄기, 아니면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에 육중하게 버티고 선 채 넓은 그늘을 드리운 플라타너스 가지를 점령하고서, 매미들은 꼭 제 세상이라도 만난 양 다투어 울음을 토해냈었다.

얼마나 열정을 다 쏟아내었으면 일본의 방랑시인 바쇼는 그 울음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을까.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구나. 이 매미의 허물은".칠 년이란 기나긴 기다림 끝에 허여받은 단 일 주일 가량의 짧디 짧은 생애, 매미들은 이 안타깝도록 덧없는 기간 동안 자신들의 삶을 최대한 의미 깊게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귀청을 뚫을 듯한 열정적인 울음은 성심을 다해 주어진 소명에 갚음하려는 녀석들의 피끓는 절규가 아닐까.

매미의 일생은 굵고 짧게 이승을 살다 떠난 이 땅의 의사(義士)며 열사(烈士)의 생애를 생각나게 만든다. 쏟아붓듯 하는 폭염에 벌거벗은 울음 하나로 맞서는 매미들의 항거, 이는 일제의 매운 채찍 앞에서도 가슴 저리도록 당당했던 선열들의 그 뜨거운 저항의 몸부림을 환치되곤 한다.

선열들의 일생은 비록 짧았지만 님들이 남긴 자취의 울림은 실로 오래이듯이, 여름 한철이 소낙비처럼 가고 선들바람이 소맷자락을 파고드는 시절에도 왕매미소리의 잔상은 여전히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왱왱거리며 맴을 돈다.

매미의 울음은 계절이 바야흐로 한여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헉헉 숨이 턱에 닿을 듯이 고단한 삼복 무렵, 모든 목숨 가진 존재들이 내리퍼붓는 폭염 앞에 생기를 잃고 흐느적거릴 때, 그들에게 조금만 더 기운을 내라고 녀석들은 쉴새없이 울음으로 채근한다.

그렇게 너무 울어 쇠잔해지면 매미들은 마침내 조용히 숨을 거둔다. 마치 온몸을 내던져 불의에 항거하다 꺾인 이름 없는 민초들의 억울한 죽음처럼.

곧이어 가을은 하루가 다르게 성큼성큼 다가설 것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미들의 울음을 대신해 밀잠자리의 유영이 온 하늘 가득 화려하게 수놓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간 한해의 여름을 또 못내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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