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행사를 할 때 주최측의 가장 큰 고민은 초청인사들의 자리 배열 즉 의전이다. 지위에 걸맞은 자리를 안찾아주면 당장 섭섭하다는 비난이 뒤따른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냥 오는 순서대로 자기 앉고 싶은 곳에 가서 앉는다. 많은 행사장을 다녔지만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 같은 자리에 앉는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항상 밝고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대체로 굳어 있는 우리네 모습과는 딴판이다. 언제 어디서나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자기 책임이 아니거나 잘못하지 않아도 '익스큐즈 미(Excuse me)' '아이 엠 소리(I am sorry)'를 연발한다.
그들은 일단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 친절하게 맞으며 최대한의 관심을 갖고 대한다. 남의 얘기에 맞장구도 잘 쳐준다. 질문에 간단한 대답만 해도 '훌륭하다, 좋다'(really, good, very good, ok)는 감탄사가 즉시 튀어 나온다.
소소한 얘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줘 말하는 사람이 신나게 만들어 준다.손님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 호스트나 그 가족들이 불편해 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가면 집 구조와 식구들을 소개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한다.
집에서 생활하는데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 전화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빨래를 하거나 그냥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 다림질도 손님이 직접하고 커피도 직접 타 마신다. 그냥 필요한 물건.물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켜 줘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한다.
다만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친절은 절대 없다.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주지 않는다. 우리처럼 손님이 오면 더 먹어라고 권하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형편에 맞게, 자기들 방식에 따라 손님을 대접한다. 그게 오히려 상대방을 편하게 만든다.
만약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오면 신경도 안쓴다. 앉으라는 법도 없고 차 한잔 대접하지 않는다. 이는 부모 형제라도 마찬가지다. 락헤이븐이란 도시에서 할인점에 가는 길에 호스트가 자기 딸이 사는 집이라며 잠시 들어가자고 했다. 물론 사전 연락이 없었다.
장인.장모가 외국 손님과 함께 오는데도 사위는 TV를 보면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딸도 그 흔한 차한잔 권하지 않았다. 떠날 때 배웅하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장인.장모는 전혀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허용된 범위에서만 배려하지 무작정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남을 위하지는 않는다. 약속 시간이 지났다고 낯선 땅에 외국인을 놔두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외국인이 왔다고 요란을 떨지도 않는다. 우리처럼 상다리 휘어지도록 식사대접 하는 일도 없다. 그냥 자기들이 먹는 반찬에 한가지 정도 더 한다. 그것도 며칠에 한번 정도. 아침에 일어나 시간이 있으면 커피와 계란 프라이 하나 해주는 정도다. 그 외는 당신이 모두 알아서 하라는 투다.
한달간 4개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중심에 놓되 타인을 아주 편하게 대한다는 사실이었다. 하나같이 친구처럼 대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도 한국에서 온 자기 친구를 소개한다는 식이었다.
미국 동북부 버윅이란 조그만 도시에서 만난 데이빗(72) 할아버지. 식품회사 중역으로 근무하다 은퇴했는데도 젊은 사람들과 조금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친구 사귀는데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20대 중반의 젊은이를 친구라며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직장 뿐만 아니라 동호회 활동이나 봉사단체 같은 곳에서도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위계질서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냥 서로의 역할만 충실히 할 뿐이다. 권위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쉽게 친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언어 습관 때문으로 보였다. 미국인들은 직책이나 직위가 아닌 이름으로 상대를 부른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경어 사용 여부, 호칭 등에 많은 신경을 쓴다. 그것이 대화를 어렵게 하고 서로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게 한다. 말을 높여야 할지 낮춰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상대방 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블룸스버그대학 총장 공관에 초청받았을 때였다. 총장과 같은 식탁에 대학 홍보실 직원이 앉았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우리 사회와 사뭇 달랐다. 처음엔 할아버지나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친해지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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