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선 로봇시대-"인간을 닮고 싶다"

입력 1999-10-21 14:09:00

어린 시절 탐독했던 만화나 공상과학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로봇. 다가오는 밀레니엄엔 지금껏 산업현장에서 일만하던 로봇이 본격적인 사회 진출에 나설 예정이다. 어린이의 친구로, 노인들의 말동무로, 가정주부의 심부름꾼으로 등장할 로봇들의 미래상을 점쳐보자.

'로봇(Robot)'은 체코의 희곡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 발표한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했다. '강제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가 영어로 바뀐 것. 당시 로봇은 '인간보다 2배 이상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인간 형상의 기계'로 묘사됐다.

로봇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50년대 부터. 54년 미국인 조지 데볼이 '프로그램 가능한 장치'를 특허출원한데 이어 61년 자동차사인 제네럴 모터스는 운반용 산업로봇을 세계 최초로 공장에 도입했다. 이후 로봇은 단순 운반 및 조립부터 정밀가공, 화학성분 분석, 인명 구조 등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해 왔다.

특히 공장자동화(FA)에 쓰이는 산업로봇은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에 이어 '스틸 칼라(Steel Collar)'라는 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생산현장 곳곳에 배치됐다. 국내 산업용 로봇시장 규모만 해도 2005년엔 로봇 생산액 8천450억원, 수요액 1조원을 웃도는 거대시장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보다 튼튼하고 효율적이며 정밀한 로봇 생산을 추구해온 로봇제조업계는 90년대 후반 들어 '보다 작게, 보다 친밀하게'로 모토를 바꿨다.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부터 애완용, 가사용 로봇 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최근 미국내 로봇제조회사인 프로보틱스사는 '시예(Cye)'라는 가사용 로봇을 개발했다.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도 하며 집안 청소까지 하는 시예는 꼬리부분에 달린 무선 전송장치를 통해 컴퓨터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집안 곳곳의 위치를 입력해 주면 시예는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가며 움직인다. 일을 마치면 지정된 곳에 돌아가 배터리를 재충전하기도 한다. 일본 NEC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말도 건네는 로봇을 개발했다.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은 300개 정도이며, 10명 정도의 얼굴을 기억할 수도 있다고.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내 휴먼로봇센터도 사람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을 결합한 로봇 '센토'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센토는 키 160cm, 몸무게 150kg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자율제어기능을 갖췄다. 지능형 소프트웨어가 내장돼 있어 흩어진 물건의 위치와 방향을 인식하거나 물건 조립, 블럭쌓기 등도 할 수 있다.

이밖에 음파탐지기를 통해 가스탱크의 균열을 감지하는 로봇거미, 노인이나 환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로봇새, 외관상 실제 물고기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로봇물고기도 등장했다. 최근 들어선 애완용 로봇시장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지난해 말 미국 타이거전자가 선보인 장난감 로봇 '퍼비'는 미국내에서만 140만개 이상 팔렸다. 200여개의 단어를 구사하며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만져주면 귀를 쫑긋거리며 킥킥거리기도 한다. 소니가 최근 개발한 로봇강아지 '아이보'의 인기도 만만찮다. 아이보는 학습기능을 통해 행동과 지식을 배우고 기쁨, 슬픔, 성냄 등의 감정 표현도 가능하다. 이처럼 애완용 로봇이 인기를 끌자 세계적 완구메이커인 마텔, 레고 등은 전자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차세대 로봇장난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으로 로봇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던 의료분야로 진출할 예정이다. 영국 임피리얼대 의료공학 연구팀은 팔의 정맥에 정확하게 주사바늘을 찔러 혈액 샘플을 뽑는 채혈 로봇을 개발했다. 팔의 각 부분을 1㎜ 단위로 부드럽게 눌러 피부 밑에 있는 혈관을 찾아낸 뒤 로봇 운영자의 지시에 따라 주사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 것. 독일 브라운호퍼연구소는 지난해 4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인간보다 정확히 뇌와 관절 수술을 해내는 로봇을 출품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모의 뇌수술 실험에서 레이저 메스, 내시경, 드릴 등을 이용해 0.01㎜의 정확도로 지정한 위치에 바늘을 찌르는 데 성공한 것.

로봇들의 영역 확대가 미래사회를 보다 밝게 만들지 암울하게 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으로 인한 재앙을 염려해 로봇 공학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로봇은 인간에 해를 끼치거나 위험한 상황에 방치해선 안되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앞의 조건이 충족되는 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물론 이런 원칙을 준수하는 고도로 지능화된 로봇이 등장하려면 아직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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