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쉰들러 리스트

입력 1999-10-18 14:42:00

리스트하면 으레 사람 잡는 명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다. 자신이 거물급으로 치는 축일수록 리스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꿎게 리스트에 명단이 오름으로써 자의든 타의든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매장당하는 사례를 보기란 그렇게 어렵잖기 때문이다. 현실이 각박해진 탓도 있지만 리스트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적인 구조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굴비 두름 엮듯 마구잡이로 엮어져 결국 사회 구석구석까지 나뒹굴며 긴가민가 의혹의 꼬리를 만드는 리스트는 대충 블랙리스트류가 압권이다.온갖 음모와 술수들이 내포된 이런류의 리스트는 곧잘 정치권에서 이용돼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 그 자체가 노리는 목적이니까 흥미진진 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랙리스트란 원래 정치, 사회적으로 경계해야할 인물 또는 상거래에서 파산 혹은 지불 불능자등 거래하기 위험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흑표를 뜻했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변질된채 호시탐탐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한 기회만 노리고 있다. 최근의 히트 리스트를 한번 보자. 한보리스트, 최순영리스트, 이형자리스트, 정태수리스트, 원철희리스트 등등. 마치 괴질에 걸린 독특한 한국병의 병원체같은 이름들이다. 어떤 이는 현정권들어서만 이런류의 리스트가 33가지라는 통계까지 내놓고 있으니 리스트공화국이라는 별칭도 그렇게 낯선 감이 들지가 않는다. 지난 92년 공개돼 충격을 몰고왔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원본이 발견돼 화제다. 쉰들러 리스트는 세계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유태인 대량학살)를 모면할 수 있도록 쉰들러가 작성한 유태인 1천200명의 명단이 적힌 리스트다. 한 가정집 다락방에서 발견된 이 원본에는 당시의 생존자들이 쉰들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까지 있었다. 우리에게는 리스트가 이런 역할을 하는 구석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갖게 하는 발견이다. 아니 땐 굴뚝에는 절대 연기 나지 않는 법에만 매달려 공연한 사람도 때려 잡을 수 있는 리스트 만능 시대에 쉰들러 리스트 원본의 발견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이 시대에 만연한 리스트의 원본도 언제가는 발견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오늘이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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