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이나 역 대합실 등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나는 공연히 미소짓게 된다. 그들의 글을 읽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글을 읽지 않고 멍청하게 앉아서 시간을 흘려 보내는 나 자신이 약간은 부끄러워지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듯 짬짬이 틈을 내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내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이는 우리 동네에서 달걀을 파는 아주머니였는데, 작은 손수레에 달걀을 가득 싣고 "계란 사이소"를 외치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는 부지런한 분이었다. 창문을 열고 "아줌마, 달걀 한 판 주세요"라고 외치면 어느 새 비닐 봉지에 달걀을 가득 담아 집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마다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나는 그저 수 많은 평범한 행상 중의 한 사람이려니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해준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나의 생각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라 그녀의 글을 읽는 습관에 관한 것인데, 그녀는 그렇게 고된 행상을 하고 다니면서도 시간만 나면 시장바닥이건, 도로가건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틈틈이 글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배움이 짧기 때문에 무엇이건 읽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부족함을 채우고자 한다는 게 그녀를 어디에서건 글을 읽게 한 이유였다.
그런 그녀가 어디에선가 본 내 글을 읽고 좋은 글에 감동받았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나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내가 내 글을 그렇게 열심히 읽어주는 사람에게 정말 떳떳한 작가인가에 대한 반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야릇한 죄의식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요즈음처럼 문학애호가들이 독자의 자리를 마다하고 저마다 모든 장르에 작가로 직접 참여하고 싶어하는 딜레탕티즘의 경향이 짙은 시대에, 그 달걀장수 아주머니는 보기 드문 진정한 독자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독자야말로 작가보다 더 문학을 살찌우는 참 문학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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