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명 계좌 막히자 시위대 거리로…파라과이 대통령, 결국 백기

입력 2026-11-06 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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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은행 파산에 1조원대 공공자금 묶여…하원 78명 전원 찬성으로 탄핵안 가결

5일(현지시간)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시민들이 우에노 은행 파산과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시민들이 우에노 은행 파산과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파라과이 성인 인구의 60%가 쓰던 디지털 은행이 사흘 만에 무너졌다. 300만 명의 예금이 묶이고 거리에 시위대가 쏟아지자,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임기를 2년 남기고 중도 사임했다.

페냐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서 "우리나라의 안정, 사회적 평화,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해야 할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제가 어느 시점에 실수를 저질렀다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리고 싶다"고 덧붙였으나, 우에노 은행과의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임 발표가 나온 것은 하원 본회의에서 탄핵안 심의가 진행되던 도중이었다. 야권 하원의원 35명은 전날 직무 비위와 이해충돌 행위를 이유로 탄핵안을 제출했다. 하원 80석 중 3분의 2인 53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집권 여당인 공화국국민연합(ANR)이 다수여서 초반에는 가결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판세를 뒤집은 것은 오라시오 카르테스 ANR 대표였다. 전직 대통령(2013~2018)이자 한때 페냐의 정치적 멘토였던 카르테스가 탄핵 지지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대통령의 사임 발표 이후에도 의원들은 표결을 강행해 78명 전원 찬성으로 탄핵안을 가결하고 상원으로 넘겼다. 파라과이에서는 전직 대통령에게 종신 상원의원직과 형사소추를 피할 수 있는 면책특권이 부여되는데, 탄핵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이를 잃게 된다.

페냐 대통령의 퇴진을 몰고 온 우에노 은행은 2021년 무명의 핀테크 업체로 출발했다. 정권의 비호 속에 파라과이 성인 인구의 60%에 달하는 30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한 대형 디지털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은 2일 우에노 은행의 지급능력 비율이 법정 최저치의 절반 아래로 떨어지자 정리 절차에 착수하고 영업을 중단시켰다.

이 은행에는 나랏돈 8억~8억5천만 달러(약 1조700억~1조1천500억원)가 유입됐다. 파라과이 국가 연기금(IPS)이 투입한 3억8천만 달러(약 5천100억원)도 포함됐다. 페냐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당시 우에노 은행장이었던 카를로스 카르발로를 중앙은행장으로 발탁했고, 정부는 이후 막대한 공공 자금을 이 은행에 쏟아부었다. 페냐 대통령 본인도 과거 우에노 은행을 지배하던 모그룹의 주식을 소유했다가 재임 중인 지난해 전량 매각했다.

은행 영업이 중단되고 예금 출금마저 막히자 성난 민심이 폭발했다. 수도 아순시온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과 예금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페냐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처벌을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가 의회 주변에서 경찰과 충돌하자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해산에 나섰다. 우에노 은행 경영진 8명은 체포됐다.

페냐 대통령의 사임으로 페드로 아얀시아 부통령이 잔여 임기를 승계할 예정이다. 페냐 대통령은 2023년 8월 취임했으며 임기는 2028년까지였다.

파라과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발족한 다자 안보 협의체 '미주 방패'(Shield of the Americas)의 주요 회원국 중 하나다. 페냐의 실각은 브라질 우파의 대선 패배,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에 이어 남미 보수 우파 진영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