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9>민영익과 허련, 운림산방과 광주비엔날레…김정희의 유산

입력 2026-11-04 09: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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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연구자

민영익(1860~1914),
민영익(1860~1914), '괴석(怪石)' 대련, 종이에 수묵, 각 129×31.7㎝,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휘날리는 점획의 활력적인 붓질과 시커먼 먹빛으로 사나워 보이는 돌덩이를 대담하게 그린 '괴석' 대련은 민영익이 '죽동궁 주인'으로 불리던 20세 전후의 작품이다. '소년세도'라고 했던 젊은 민영익의 기세등등한 권세를 필묵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민영익의 집안은 그가 태어났을 때 만해도 가세가 보잘 것 없었으나 인척인 고종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가 권력을 잡으면서 아버지 민태호, 숙부 민규호가 벼슬길에 올랐고 집안이 피기 시작한다. 민영익은 외아들이었으나 16세 때 명성황후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황후의 친정 제사를 받드는 조카이자 고종의 외사촌이 돼 순식간에 민씨 외척 세력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민영익은 아버지와 숙부가 진외가의 당숙인 김정희 문하에서 글씨를 배워 서예의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글씨를 잘 썼다. 19세 때 소치 허련(1808~1893)을 죽동궁 사랑채에 머물게 하며 그림을 그리게 한 일이 있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18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정3품 당상관인 이조참의가 돼 조정의 인사권을 모두 쥐었을 때다. 민영익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붓을 잡았을 만큼 서화를 사랑했다.

민영익은 김정희의 애제자인 노대가 허련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나이 차가 무려 50여 년일 뿐 아니라 신분도 하늘과 땅 차이이고 필묵적 개성 또한 너무도 다르다. 그러나 농담의 짧은 터치를 중첩시키며 수직으로 높이 솟은 괴석을 마치 땅 위에 심어놓은 듯 그린 것은 허련의 영향이다.

허련의 '괴석도' 두 폭이 2026 광주비엔날레 제3전시실에 나왔다(11월 15일까지). 진도 출신인 허련은 스승이 작고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위한 여행을 하며 만년을 보냈다. 운림산방은 호남 남종화의 진원지가 돼 허씨 집안에서 화가를 연이어 배출하며 순수미술의 저변을 넓혔다.

올해 31주년이 되는 광주비엔날레는 허련과 운림산방으로부터 200여 년을 이어져온 김정희의 유산이다. 2026년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릴케의 시구인 '너는 네 삶을 바꿔야한다'이다. 김정희가 서예의 혁신을 이룬 방법론은 고전의 바다로 들어가 자신만의 면목(面目)으로 나온 입고출신(入古出新)이었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