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오늘날 우리의 시각 환경은 과잉과 포화의 연속이다. 모든 공간이 디지털 기술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인공지능이 매초 쏟아내는 이미지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러나 이 풍요의 역설은 우리를 정형화된 디지털 격자 속에 가두어 스스로 상상하고 사유하는 힘을 잃게 하고 있다. 상상력이 고갈된 이 시대에 나는 다시 동양화의 선과 여백을 소환한다.
서양의 고전 회화가 배경까지 채워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면, 동양화의 선은 테두리를 긋는 경계선에 머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그어가는 필획은 화가의 기운과 그 순간의 교감이 번져 나간 생명의 궤적이다. 선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생동하는 운동감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선이 자유롭게 숨 쉬도록 감싸 안는 존재가 바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빈 공간, 여백이다. 조선의 화가들은 화폭 위에 가을 산의 쓸쓸함을 그릴 때, 굳이 붉고 노란 단풍을 칠하지 않았다. 먹색의 농담 몇 번, 그리고 성글게 그어진 붓질 사이에 남겨진 텅 빈 공간만으로 그곳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봄인지 겨울인지를 완벽하게 전달했다. 색을 넣지 않아도 사계절이 살아 숨 쉬었던 이유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 여백을 채우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림은 작가가 시작하지만 완성하는 것은 온전히 감상자의 몫이다. 선과 여백의 상상력이 만나는 시선의 공유가 동양화의 본질이었다.
이처럼 시선이 닿아 완성되는 예술의 신비는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진리와 한 축으로 관통한다. 일찍이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그의 저서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통해 현대 과학이 도달한 궁극의 진리가 동양의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선언했다. 양자물리학이 본 물질의 본질은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누군가 쳐다보기 전까지는 형태가 없는 뿌연 안개 같은 '파동'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 관찰자가 관심을 가지고 시선을 던지는 순간, 비로소 뚜렷한 실체인 '입자'로 모습을 바꾼다.
이 관찰자 효과는 동양화의 구조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화폭 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여백(파동)'은 감상자의 주체적인 시선이 닿는 순간 비로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의미(입자)'로 변한다. 작가의 선과 감상자의 시선이 만나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빈틈없는 격자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을 돌려야 한다. 관성적인 주입에서 벗어나 매 순간 살아있음의 호흡을 실어 나만의 생명의 궤적을 그려나갈 때다. 그래야 디지털 종속을 깨고 인간 고유의 영성을 회복하는 걸음을 뗄 수 있다. 이 살아 움직이는 선과 여백의 미학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세상과 어떻게 얽히고 귀속되는지 거대한 우주의 비밀로 우리를 여전히 인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