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 도민 중 41명… 의성을 대표해 무대에 선 '나눔의 사람'

입력 2026-10-29 17: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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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최전선 의료진에게 김밥을 보내던 손, 산수유·도라지즙으로 수년째 이웃을 품다

지난 23일 열린
지난 23일 열린 '2026 경상북도민의 날' 기념식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왼쪽)와 '자랑스러운 경상북도민상' 본상을 받은 박준경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 개도 130주년, 도민의 날 지정 30주년. 30년 역사에서도 가장 의미가 큰 해에 열린 지난 23일 '2026 경상북도민의 날' 기념식에서 의성군을 대표해 이름이 불린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박준경 씨다.

'자랑스러운 경상북도민상'은 경북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한 도민에게 주는 경북 최고 권위의 도민 표창이다. 올해 250만 경북도민 가운데 이 상을 받은 이는 41명(특별상 8명·본상 33명)뿐이다. 각 시·군의 추천과 현지 조사, 공적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하는 좁은 문이다.

박 씨가 이 문을 통과한 힘은 직함이나 재력이 아니었다. 나라 전체가 멈춰 섰던 2020년 봄, 국내 첫 대규모 감염 확산의 한복판이던 대구에서 감염병 전담병원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은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박 씨는 그들을 위해 직접 김밥을 쌌다. 누가 시킨 것도, 알아주는 이도 없던 일이었다.

그 마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나눔은 이후 의성의 땅이 키운 산수유와 도라지로 만든 즙으로 이어지며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움직였고, 위기가 지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그를 의성의 얼굴로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수상 소식에 고개부터 저었다. 다음은 박 씨와의 일문일답.

-개도 13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의성군을 대표해 도민상을 받았다. 소감은?

"제가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해 온 것뿐인데 의성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게 되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 상은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성 군민들의 주문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나눔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김밥을 싸서 동산병원에 기증을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다들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던 때였잖아요. 그 한가운데서 방호복을 입고 버티는 분들을 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밥 한 끼였고, 그래서 그걸 했습니다."

2020년 2~3월 대구·경북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의 대부분이 몰린 지역이었다. 대구동산병원은 병원 전체를 비우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해 환자를 받았고, 전국에서 의료진을 향한 응원이 이어졌다. 박 씨의 김밥은 그 가장 이른 응원 가운데 하나였다.

-김밥에서 산수유·도라지즙으로 나눔이 이어졌다.

"의성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니까요. 의성 산수유와 도라지는 몸에 좋기로 이름난 우리 고장의 자랑입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난 가장 좋은 것을 필요한 분들께 드리는 것, 그게 의성 사람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성은 전남 구례와 함께 전국을 대표하는 산수유 산지다. 박 씨의 나눔은 이웃을 돕는 일인 동시에 의성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무엇이 버티게 해 줬나?

"혼자 하다 보니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준비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었고요. 그래도 '잘 받았다', '덕분에 힘이 났다'는 한마디를 들으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한 번 시작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 일 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얼굴도 모르는 분이 '그때 정말 큰 힘이 됐다'고 연락을 주실 때입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만둘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지난해 대형 산불은 의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나?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걸 보면서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평생 일군 집과 과수원을 잃은 분들 앞에서는 위로의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의성 사람들은 어려울 때 서로 먼저 손을 내밀어 왔습니다. 코로나 때도 그랬고, 산불 때도 그랬습니다. 그 힘으로 의성은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청송·영양·영덕으로 번지며 국내 산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남겼다. 천년 고찰 고운사도 이때 큰 피해를 입었다.

-의성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의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면 어르신들만 남은 곳이 많고 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귀해졌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와 일하고, 아이 낳고, 여기서 나이 들어 갈 수 있어야 의성에 내일이 있습니다. 나눔도 결국 그런 의성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이 상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묵묵히 곁에서 도와준 가족과 함께 마음을 보태 준 이웃들입니다. 김밥 하나를 싸도 손이 여럿 필요합니다. 이 상은 저 혼자가 아니라 그분들과 함께 받은 상입니다."

-행정이나 제도에 바라는 점은?

"작은 나눔이라도 하고 싶은 분들은 많은데,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 마음을 필요한 곳과 바로 이어 주는 창구가 더 가까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의성에 숨어 있는 나눔이 훨씬 많이 드러날 겁니다."

-의성의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김밥 몇 줄로 시작했습니다. 돈이 많아야, 시간이 남아야 나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멈추지 않고 하는 것. 그게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꼭 말해 주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10년 뒤 의성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

"지금까지처럼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바라는 건 하나입니다. 살고 싶은 의성, 머물고 싶은 의성, 행복한 의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고 싶고, 사는 사람은 떠나고 싶지 않은 고장이요. 그런 의성을 만드는 데 끝까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박 씨는 "제가 받을 상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러나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 가장 먼저 움직였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시간은 이미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었다. 250만 도민 가운데 41명. 그 이름 한가운데 의성의 박준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