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고전의 문장 위에 겹쳐진 오늘의 풍경…진민욱 개인전

입력 2026-10-29 11: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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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
12월 2일까지 대구 동구 021갤러리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가 021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021갤러리 제공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가 021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021갤러리 제공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진민욱 작가의 개인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가 021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021갤러리 제공
개인전
개인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를 선보이고 있는 진민욱 작가. 이연정 기자

매일 같은 길을 다니더라도 그 길은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풀이 자라고 베이거나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기도 하고, 그저 지나쳤던 풍경이 내 마음의 여유와 감정에 따라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진민욱 작가는 오랫동안 걷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관찰하고 수집해왔다. 그에게 풍경은 눈앞에 놓인 하나의 완결된 장면이 아니라, 그곳에 축적된 시간과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과 감정이 끊임없이 덧입혀지는 장소다.

특히 최근 그의 작업은 일상적인 장소를 걷는 산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 속 무대를 조사하고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인 답사로 확장됐다.

그는 지난 2년간 고전 노래를 주요 텍스트로 삼아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직접 걷고, 그곳의 현재 풍경과 사건의 흔적을 관찰하고 수집했다. 동시에 동서양의 오래된 시와 문학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본 풍경을 자신의 경험과 교차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실제로 본 것과 기억한 것, 문장으로 읽은 것과 상상한 것이 서로 스며들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놓인 풍경이 펼쳐진다.

전시된 주요 작품 중 일부는 판소리 '춘향가'의 무대가 된 남원고개부터 광한루까지의 길을 답사하며 채집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했다. 또한 윌리엄 워즈워스의 '서곡(The Prelude)', 윤동주의 '종달새' 속 오래된 문장이 작가의 현재와 만나 새로운 장면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된 장소를 직접 찾아 찍은 사진 이미지와 시, 가사의 구절이 상징하는 이미지, 내가 일상에서 얻었던 이미지 등을 재조합해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고전의 이야기뿐 아니라, 동아시아 고전 회화 매체와 기법을 연구하고 오늘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다.

진민욱, 세 개의 별.
진민욱, 세 개의 별.

021갤러리(대구 동구 안심로 54)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제목은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겹쳐 쓰기'. '팰림프세스트'는 이미 쓰인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전의 흔적과 새로운 기록이 하나의 표면에 겹쳐 남는 상태를 의미한다.

작가는 "고전의 얘기를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풍경 속에서 재해석했을 때 어떤 새로운 얘기를 담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공감하고 또 의구심을 갖게되는지 대화를 나누고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12월 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서사적 확장과 함께, 전통회화를 기반으로 작업해 온 표현의 변화도 함께 볼 수 있다.

021갤러리 관계자는 "오래된 이야기와 오늘의 풍경, 실제와 상상, 기억과 감정은 서로를 지우는 대신 하나의 화면 위에 여러 겹의 흔적으로 남는다"며 "그렇게 작가는 지나간 것을 현재로 다시 불러들이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아직 쓰이지 않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