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전 제주서 채집한 식물표본, 일본 대학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나다

입력 2026-10-27 16:31:05 수정 2026-10-27 17: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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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이사장, 교토대 식물표본관에서 타케 신부의 '4638 식물표본' 확인
"식물학적 업적 재평가와 생물다양성 보전에 활용"

(사)에밀타케식물연구소 정홍규 이사장이 일본 교토대 종합박물관 식물표본관 수장고에서 제주도에서 채집한 에밀 타케 신부 채집 표본(맨 오른쪽)과 고이즈미 겐이치 채집 표본 등을 살펴보고 있다. 김진만 기자
(사)에밀타케식물연구소 정홍규 이사장이 일본 교토대 종합박물관 식물표본관 수장고에서 제주도에서 채집한 에밀 타케 신부 채집 표본(맨 오른쪽)과 고이즈미 겐이치 채집 표본 등을 살펴보고 있다. 김진만 기자

110여년 전 제주도의 비바람을 맞고 자란 식물채집이 한 세기를 지나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한 대학 박물관 수장고에서 낯선 한국 방문객들을 맞았다.

(사)에밀타케식물연구소 정홍규 이사장 일행이 일본 교토대 종합박물관 식물표본관(KYO) 수장고를 찾은 것은 지난 21일. 이들은 에밀 타케(1873~1952) 신부가 1908년 제주도에서 채집한 식물표본(채집번호 4638)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

국내 문헌이나 사진만으로는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운 표본자료 등을 직접 살펴봄으로써 한 세기 전 한반도의 식물들이 어떻게 기록·연구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대학박물관 식물표본관 수장고에서 마주한 '4638' 표본에는 빛바랜 표본지 위에 눌려 있는 마른 나무 줄기와 잎들이 110여년의 세월과 공간을 뛰어 넘어 굳건하게 살아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일본 교토대 종합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8년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채집한 왕벚나무 식물표본 4638. 교토대 종합박물관 제공
일본 교토대 종합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8년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채집한 왕벚나무 식물표본 4638. 교토대 종합박물관 제공

정 이사장은 "1910년대 한라산 기슭에서 자랐을 식물을 한 세기를 지나 일본의 대학박물관 수장고에서 직접 마주한 순간 채집 당시의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되살아 나듯 생생한 숨결과 함께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표본 아래 쪽에는 타케 신부가 1908년 4월 14일, 당시 서구에 알려졌던 켈파르트(Quelpaert·제주도) hoatien(호아천) 해발 600m 지점에서 채집번호 4638 표본을 채집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 학명과 학명 변경 과정 등을 정리한 라벨이 붙어 있어 이 표본의 '이력'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이 표본을 통해 독일 베를린대학 쾨네 교수가 1912년 처음으로 학계에 제주 왕벚나무 존재를 발표했다. 당시 베를린대학에 있었던 유일한 정기준표본(HOLOTYPE)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에 타 사라졌지만 다행히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채집한 중복표본(ISOTYPE)이 교토대 종합박물관 등 4곳에 남아 있는 학술적 가치가 높다. 20세기 초 우리나라 근대 식물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한 세기 전 한라산에서 채집된 식물표본이 체계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고 부럽다. 하지만 우리 땅에는 이 표본이 남아 있지 않고 외국의 대학 박물관 수장고 안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게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는 감정이 교차했다.

에밀타케식물연구소는 교토대와 협의해 앞으로 타케 채집표본 등을 대여해 국내에서 전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타케 신부의 식물학적 업적을 재평가하고,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에 활용하고자 한다.

'식물표본 4638'은 시공을 뛰어 넘어 채집지의 기억,이 땅의 식물역사를 어떻게 복원하고 발전시킬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식물표본이 과거에 멈춰 있는 자료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우리나라 벚꽃 명소 대부분의 벚나무가 동경벚꽃(소메이요시노)으로 재배종인데 비해 제주 왕벚나무는 자생종으로 병충해에 강하고 꽃이 우아하고 수명도 길다.

정 이사장은 "앞으로 생물다양성을 위해 우리 자생 왕벚나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후계목을 키워 이를 더 많이 심고 보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