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교수(연극평론가)
단종의 장릉은 외로워 보였다. 장릉 입구에서 단종의 능침까지는 대략 300~400m 정도였는데, 단종의 역사적 삶을 한 번 되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능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대략 10분 정도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효과 때문일까. 인근 상점들은 영화로 인해 장릉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관광객들은 장릉에 도착한 뒤 능을 한 번 둘러보고, 청령포나 관풍헌, 영월의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하루 정도의 코스가 인기라고 설명했다. 영월 시내와 장릉 인근에는 영화 포스터가 즐비했다. 배우들이 방문한 식당에는 인증사진과 사인이 걸리면서 또 하나의 관광코스가 되고 있었다. 장릉이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기억하는 역사적 공간이면서도 영월의 여러 관광코스 중 한 곳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릉을 천천히 걷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쳤다. 짧았던 생과 죽음, 그를 둘러싼 역사의 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연극 〈부자유친〉의 한 장면도 겹쳐졌다. 장릉을 천천히 둘러보다 특설무대로 걸었다. 관객들은 대부분 영월 주민들로 보였고 가족 단위가 많았다. 해가 넘어가면서 장릉을 좌우로 둘러싼 소나무 숲에도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야외무대 객석은 대략 500석 규모였다. 특설무대 뒤편으로 잔디가 깔린 경사로와 언덕으로, 단종이 잠들어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장릉(莊陵)이 보였다. 569년 전 이곳 영월에서 소년으로 생을 마감한 단종의 이야기를 실경뮤지컬 〈1457, 소년 잠들다〉(극작 상지윤, 작곡 김은지, 연출 이호영)로 담은 무대 주변은 장릉의 숲과 바람, 어둠과 소나무가 절묘하게 무대가 되고 있었다. 마치 단종의 영혼이 소나무 숲에서 깨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무대는 야외무대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을 향하는 방향으로 오케스트라석이 자리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 농악대와 사물놀이팀에는 영월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영월동강합창단과 영월군 어린이합창단, 군민오케스트라, 사물놀이와 농악대가 단종의 죽음과 역사성을 제례와 축제, 뮤지컬적인 형식으로 결합해 〈1457, 소년 잠들다〉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그런 만큼 작품은 단종의 죽음과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단종의 죽음을 기억하고,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을 채우고 위로하는 진혼의 형식에 영월 주민들이 직접 무대에 참여하면서 소년 단종의 역사를 영월 지역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극 마지막에는 단종의 죽음 이후 시간을 '진혼제'로 설정하고 있다. 단종의 역사성과 더불어 살아온 영월 군민들이 등불과 흰 천을 들고 등장해 소년 단종의 죽음을 기억하고 진혼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연출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지역대표축제(공연)로서 이 작품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겠다.
◇피로 쓴 곤룡포, 세조의 악몽으로 시작되는 1457년
〈1457, 소년 잠들다〉는 세조 12년 궁궐에서 시작된다. 세조의 악몽이다. 야외 특설무대인 만큼 실경(實景) 영상을 투사해 극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고, 무대 좌우 스크린으로 특징적인 장면들을 송출해 극중 장면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궁궐, 죽은 자들의 비명과 목소리가 들리고 홀로 남은 세조는 죽은 의경세자를 찾는다. 곧 자신이 저지른 죽음과 마주한 세조의 입에서 "나의 업보"라는 말이 야외 공간으로 뚜렷이 들렸다. 첫 넘버 〈나를 버리지 말아다오〉가 이어지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와 조카를 죽인 세조의 기억과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작품은 별도의 막 구분 없이 프롤로그를 포함해 12개의 장면으로 구성(세조의 악몽과 죄의식·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영월 유배·청령포·사육신·단종의 죽음·엄흥도의 수습·정순왕후의 그리움·진혼제 등)되어 있다. 공연이 야외공연임을 감안했을 때 극을 이루는 장면별 몰입감보다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못다 이룬 사랑, 죽음을 앞둔 단종의 내면적인 불안과 두려움, 왕위를 차지한 세조의 죄의식을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데 극의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장면과 장면을 촘촘하게 극적으로 연결하기보다는 음악과 합창, 도깨비들의 해설과 관객과의 소통, 농악과 사물놀이를 통해 극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단종의 죽음과 정순왕후의 그리움, 영월 사람들의 기억을 하나의 진혼으로 소환하는 방식이다. 왕권을 손에 넣은 세조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자신의 몸을 긁어대며 죽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곤룡포는 권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세조가 벗을 수 없는 죄의 옷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단종의 죽음으로 서막을 열지 않고 세조의 악몽과 죄의식에서 1457년의 역사를 소환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버리지 말아다오〉는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다기보다 세조의 고통과 두려움을 표상하는 노래이다. 세조는 왕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왕이 된 뒤에는 오히려 죽은 자들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극의 흐름을 연결하는 정도로 등장하고 있다.
이어, 왕권을 빼앗긴 단종과 왕위를 차지한 세조의 정치적인 대립,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과 이별, 사육신의 충절, 왕명을 수행해야 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죄책감,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 단종의 죽음을 지켜본 영월 사람들의 기억과 '운명'을 거쳐 결국 어린 단종과 아내 정순왕후의 '사랑'과 '그리움', '기억' 정도로 이어진다. 그런 만큼 〈1457, 소년 잠들다〉는 단종의 역사적 비극성과 세조, 사육신, 엄흥도의 충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소년 단종과 어린 정순왕후의 사랑이 중심이다. 왕과 왕비라는 역사적 인물보다는 서로를 그리워했던 어린 부부의 이별과 사랑을 통해 단종의 비극적 감정으로 확장하고 있다. 극 중 영도교 이별 장면을 되돌아보자. 단종은 왕권을 되찾겠다는 정치적인 의지를 드러내기보다 나약하고 불안한 어린 소년의 이미지로 정순왕후와 헤어져야 하는 개인적인 슬픔을 보인다. 청령포 장면에서도 단종은 "나는 다시 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정순왕후와 함께 행복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대사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왕위를 빼앗긴 군주로서의 절망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한 인간의 슬픔을 감각하게 하고, 단종을 '비운의 왕'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바라보기보다 한 인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한 소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장릉 낮도깨비'를 등장시킨 점도 흥미롭다. 단종이 영월로 들어오던 순간부터 죽음과 매장, 정순왕후의 그리움까지 '기억의 목격자'이면서 장릉에 남아 단종과 죽은 자들의 영혼을 지켜온 수호신 같은 극 중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도깨비들은 1457년 단종의 시간과 장릉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 사이를 오가며 극을 풀어가는 설정도 이 극의 윤활유다.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을 설명하다가도 권력을 두고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슬쩍 비틀어 웃음으로 만들고,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를 넣고 관객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로 기능된다. 그렇다고 웃음의 효과, 역사적 거리두기의 소외 효과성으로 설정됐음에도 웃음만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단종이 영월로 들어오고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들을 지켜보다가도, 마지막에는 단종의 죽음을 위로하고 영혼을 보내는 진혼의 역할까지 한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장면이다. 청계천 영도교로 장면이 바뀌면 영월로 떠나야 하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이다. 단종은 다리를 바라보며 "이제 이 다리를 건너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십 년이면 돌아올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이 장면부터 단종은 왕이 아니라 소년으로 감각되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문종을 잃고 왕이 되었지만 그 왕좌마저 내려놓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가족들이 모두 사라진 단종에게 정순왕후는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인 셈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죽어 고아가 된 저에게 당신은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대사 한마디에 소년이었던 왕 단종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리고 정순왕후가 단종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드러난다.
왕과 왕비이기 전에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린 부부였다. 그래서 영도교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은 폐위된 왕과 왕비의 이별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소년 단종의 슬픔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이 서로를 '푸른 소나무'로 기억하겠다는 노랫말은 이후 청령포의 관음송과 장릉의 소나무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소나무는 배경이 아니라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 사육신의 충절, 영월 사람들의 기억을 연결하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야외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실제 장릉의 소나무 숲이다. 극중에서 반복되는 소나무의 이미지와 실제 장릉의 소나무가 겹쳐지면서 실경공연의 장소성이 효과적으로 살아났다.
◇"어서 오시오, 여기는 영월" 죽음의 역사가 마당놀이와 진혼굿의 축제로
"어서 오시오, 여기는 영월."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로 무거워진 극의 분위기는 영월에 도착하면서 한바탕 마당놀이로 바뀐다. 농악대의 장단이 울리고 장릉 낮도깨비들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를 받아내면 장릉의 야외무대는 놀이판이 된다. 특히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구성은 놀이에서 진혼으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관객들과 어울리는 마당놀이였다면 단종의 죽음 이후에는 노래와 연주, 합창이 죽은 단종과 떠나간 영혼들을 위로하는 진혼굿처럼 이어진다. 결국 〈1457, 소년 잠들다〉는 단종의 죽음을 비극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농악대와 어린이합창단, 주민 합창과 군민오케스트라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죽음의 역사를 마당놀이로 풀어내 진혼굿적 축제로 확장시키는 연출적 구성이 단종과 장릉의 서사와 잘 맛물린다. 배일치 고개를 넘어 영월로 들어오는 어린 단종을 바라보면서도 영월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마음으로 절을 올린다. "이름조차 죄가 되어 마음으로 절을 하옵니다"라는 노랫말처럼 왕이었지만 왕이라 부를 수도 없었던 단종과 그를 알아보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던 영월 사람들의 마음이 겹쳐진다.
이어지는 〈먼 곳에서도〉에서는 영월의 단종과 한양의 정순왕후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노래하면서 두 사람의 그리움을 다시 연결한다. 정치적인 유배의 역사가 어린 부부의 이별과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이어 세조와 단종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세조는 자신이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에 분노하고 단종에게 "내가 첫째가 아닌 것 빼고는 무엇이 부족하냔 말이다"라고 몰아붙인다. 단종은 "삼촌, 무엇이 이렇게 뒤틀린 세상을 만든 것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이어지는 〈필요한 왕〉에서 두 사람의 권력에 대한 생각이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너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너를 이용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나는 이용한다"는 세조의 대사처럼 세조가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하는 인물이라면 단종은 희생되는 인물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왕의 죽음이 아니라 소년의 죽음
사육신의 죽음 이후 극은 단종의 마지막 시간으로 향한다. 큰비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면서 관풍헌으로 옮겨진 단종에게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도착한다. 단종은 "어린 내가! 무엇이 그토록 두렵습니까?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절규한다. 단종의 죽음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한 소년의 죽음으로 변주된다. 왕명을 수행해야 하는 왕방연도 "명령이라고 따르다 보니 내가 인간의 길을 벗어나고 말았구나"라며 괴로워하고 〈단장가〉를 통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죄책감을 드러낸다.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도 옳은 것인가. 단종의 죽음 앞에 왕방연의 내면을 시각화하며 권력의 명령 사이에서 고뇌하는 왕방연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린다.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엄명을 내리고 누구도 시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그때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에게 다가간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달려왔습니다. 마음보다 발이 먼저 달려왔습니다, 전하." 엄흥도를 설명하는 것은 이 대사 한마디에 녹아 있다. 왕방연이 왕명을 따르고도 평생 죄책감을 짊어져야 하는 인물이라면 엄흥도는 왕명을 거슬러서라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선택한다. 단종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 왕방연과 엄흥도를 대비시킨 것도 이 작품에서는 대비감이 적절했다.
◇장하늘의 단종, 서지유의 정순왕후
단종 역의 장하늘은 이 작품이 제목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를 미성으로 역할의 특징을 보여준다. 왕권을 빼앗긴 비운의 왕보다는 정순왕후와 헤어져야 하고, 낯선 영월로 유배되어 홀로 남겨지고, 죽음을 앞두고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어린 단종의 감정을 뮤지컬 넘버로 적절하게 인물화했다. 특히 "나는 다시 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정순왕후와 함께 행복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습니다"라는 청령포 장면과 "어린 내가! 무엇이 그토록 두렵습니까?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장하늘의 단종은 왕으로 죽어가는 인물보다 평범하게 사랑하고 살아보고 싶었던 소년으로 기억되게 했다. 정순왕후 역의 서지유는 영도교에서 단종과 헤어지는 어린 아내의 슬픔에서 출발해 단종이 영월에 있는 동안에는 서로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을, 단종의 죽음 뒤에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 정순왕후의 긴 시간을 연결하고 있다.
특히 단종이 죽고 난 뒤 〈나의 임은 어디에〉 장면에서 정순왕후 역을 맡은 서지유의 존재감은 컸다. 장하늘의 단종과 서지유의 정순왕후가 만들어내는 감정은 비극적인 왕과 왕비의 역사라기보다 끝내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어린 부부의 사랑으로 감각되기에 뮤지컬 넘버로 승화된 감정은 충분해 보였다. 첫째 도깨비 김늘메, 둘째 도깨비 강미선, 셋째 도깨비 신혜민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전환하면서도 시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들이다. 세 도깨비의 역할은 단종의 역사에서 필요한 대목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면서 극 전체의 호흡을 조절한다. 단종을 불쌍한 왕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인간들이 권력을 놓고 벌이는 일들을 슬쩍 비틀기도 하고, 영월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역사를 왕과 충신들의 이야기에서 영월 사람들의 이야기로 돌려놓는다.
◇"기억하면 살아있는 것" 장릉에서 벌이는 진혼굿
마지막은 '진혼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단종 한 사람의 영혼만 위로하는 진혼제가 아니다. 도깨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관객들의 기억까지 불러낸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있고 누구에게나 떠나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단종의 죽음을 확장한다. 영월 사람들이 등불과 흰 천을 들고 들어오고 어린이와 주민들의 합창, 군민오케스트라와 농악이 다시 한데 모인다. 공연 초반 관객을 들썩이게 했던 놀이와 음악이 마지막에는 죽은 사람을 보내고 기억하는 진혼의 음악으로 달라지는데 〈진혼곡〉의 이 노랫말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단종을 기억한다는 것은 1457년에 죽은 한 왕의 비극을 기억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종을 사랑했던 정순왕후, 죽음을 각오하고 시신을 거둔 엄흥도, 왕명을 수행하고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왕방연, 단종을 왕이라 부르지도 못하면서 마음으로 절을 했던 영월 사람들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월동강합창단과 영월군 어린이합창단, 군민오케스트라, 농악대와 사물놀이팀의 참여는 단순히 공연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구성으로 기능되기보다 단종과 함께 569년의 시간을 살아온 영월 사람들이 직접 단종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연주하고 진혼한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장릉은 처음 올라올 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능침까지 걸어 올라가 단종의 무덤을 바라보고 다시 내려오는 역사적인 장소였다면,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곳에 잠들어 있는 열일곱 소년의 시간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다.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것도 아니었고 다시 왕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정순왕후와 평범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단종'이 아니라 '소년'인가 보다. 〈1457, 소년 잠들다〉는 왕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한 소년의 사랑과 외로움, 그를 기억해온 영월 사람들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세조에게 남은 것이 죽은 자들에 대한 죄의 기억이라면 단종과 정순왕후에게 남은 것은 사랑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569년 동안 품고 있는 곳이 영월이고 장릉이다. 공연이 끝나고 장릉의 소나무 숲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무대의 조명은 꺼졌지만 단종의 이야기는 잠들지 않았다. 569년 전 이곳에서 잠든 열일곱 소년을 영월 사람들이 다시 깨워 노래하고, 놀고, 울고, 진혼한 밤이었다. (재)예술경영센터의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된<1457, 소년 잠들다〉는 그렇게 죽음의 역사를 한바탕 마당놀이로 풀어내고, 마당놀이는 다시 죽은 자와 산 자를 위로하는 진혼굿이 되어 장릉의 소나무 숲으로 돌아갔다. 수십여 명의 배우들과 지역 주민들이 콜라보한 〈1457, 소년 잠들다〉는 극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단종이 잠들어 있는 영월 장릉의 특징을 시민친화적으로 살려낸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26년 문화체육관광부·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에는 연극 분야 17개 단체가 선정됐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