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속의 파키스탄, 발티 사람들의 고향
라다크의 누브라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갈수록 눈 덮인 봉우리와 황갈색 바위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간간이 나타나는 초록빛 계곡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사람이 살아가는 땅이라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카라코룸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거칠게 맞물린 깊은 계곡 사이에 거짓말처럼 둥지를 튼 작은 마을, 바로 투르툭(Turtuk)이다.
투르툭은 인도 라다크 연방직할지 최북단에 자리한 국경마을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통제선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역사적으로는 발티스탄 문화권에 속했던 곳이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인도의 통제 아래 들어오며 마을의 국적은 달라졌다.
그러나 국경선 하나가 사람들의 기억과 문화를 단번에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투르툭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진 것도 그러한 역사적 흔적이었다. 이곳에서는 라다크의 다른 마을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불교 사원 곰파나 마니차보다 이슬람 사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은 주로 이슬람교를 믿으며 발티어를 사용한다. 얼굴 생김새와 전통 의상, 음식과 건축 양식에서도 라다크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묻어난다. 투르툭은 말하자면 인도라는 현재의 국경 안에 남겨진 발티 문화의 한 조각이다.
마을 입구에 내려 좁은 길을 따라 오래된 다리를 건너자 투르툭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사라진 마을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물 흐르는 소리, 골목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 좁은 골목과 계단 사이에는 오래된 돌집들이 이어지고, 담장 너머로는 나무와 밭이 모습을 내밀었다.
여행자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투르툭이라는 이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름 때문인지, 풍경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상하게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 천사들이 살아가는 눈 녹은 물이 만든 사막의 오아시스
투르툭의 생명은 마을 뒤편의 높은 산에 여름에도 남아 있는 만년설이 녹으며 맑은 물이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을 곳곳으로 흘러든다. 주민들은 이 물을 농업과 생활에 이용한다. 산에서 내려온 물은 좁은 수로를 따라 농경지와 집으로 흘러들고 다시 아래쪽 계곡으로 이어진다. 척박한 산악지대에서 물은 마을의 생명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황갈색 산맥 사이로 펼쳐진 초록의 밭과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살구나무였다. 여름 햇살 아래 마을 곳곳에 있는 살구나무의 탐스러운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척박한 고산지대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바라보며, 자연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삶을 일구어온 이곳 사람들의 강인함을 생각했다.
마을 골목에서는 또 다른 투르툭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낯선 여행자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수줍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다가도 부끄러운지 금세 골목 안으로 달아났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을 때 한 소녀가 다가와 손짓으로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와 손짓만으로도 충분했다.
투르툭의 시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면 골목의 오래된 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을에는 전통적인 발티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헤리티지 하우스(Balti Heritage House)가 있다. 돌과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은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을 갖추고 있다. 혹독한 겨울과 거센 산바람을 견디기 위한 구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생활도구와 그릇, 의복 등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품은 물건들은 박물관의 전시품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남겨진 기억처럼 느껴졌다. 낡은 나무 계단과 두꺼운 벽, 작은 창문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수많은 겨울을 견뎌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투르툭의 전통가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축적해온 생활의 지혜가 담긴 공간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이러한 지혜를 보여주는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물의 힘을 이용해 곡물을 빻던 물레방아와 차가운 지하수의 흐름을 활용한 전통적인 저장 방식도 그중 하나다.
◆ 산길 끝에서 만난 투르툭의 폭포
투르툭 여행에서 조금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마을 뒤편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폭포 트레킹에 나서볼 만하다. 마을에서 약 3㎞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투르툭의 폭포를 만나는 일은 폭포 하나를 찾아가는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마을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여행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어느 순간 좁아지고, 바위와 흙이 섞인 구간에서는 발을 디딜 때마다 신중해야 한다. 고산지대의 지형까지 더해져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이다. 특히 일부 구간은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기 때문에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뒤돌아보면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조금 전까지 발밑에 있던 투르툭 마을이 어느새 한눈에 들어온다. 초록의 밭과 살구나무 사이로 집들이 모여 있고, 마을 아래로는 시욕강이 은빛 물길을 이루며 흘러간다.
황갈색의 거대한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투르툭만은 선명한 초록빛을 품고 있다. 그제야 이 마을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이유가 온몸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오르자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바위틈을 흐르던 물이 점차 굵어지더니 마침내 산비탈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마르고 거친 산악지대에서 만난 맑은 물줄기는 특별했다. 여름에는 눈과 빙설이 녹은 물이 더해지면서 물줄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폭포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발아래에는 투르툭의 초록 들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시욕 계곡이 이어졌다. 더 멀리에는 겹겹이 솟은 카라코람의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었다.
폭포까지 힘들게 올라온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폭포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풍경인지도 모른다. 날씨가 맑고 시야가 좋은 날에는 멀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K2의 봉우리를 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카라코람의 산악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벅차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와 발아래 초록빛으로 빛나는 투르툭, 그리고 그 너머 끝없이 이어지는 카라코람의 산맥. 어쩌면 투르툭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국경과 자연의 거친 조건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색과 삶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투르툭은 그렇게 여행자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는 마을이 되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