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인 연천군은 30만 년 전 한반도 인류 태동기부터 구석기시대, 고구려, 고려, 조선, 근현대사까지 '지질·역사·자연'이 살아 숨 쉬는 땅이다. 연천의 대표 자원으로는 우선 철원 평강지역에서 흘러내려온 용암이 만들어 낸 재인폭포·주상절리 등 지질명소가 있다. 또 한반도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전곡리 선사유적지·고구려 호로고루·태풍전망대는 물론 두루미 서식지·댑싸리공원 등 자연자원까지 어우러진 곳이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2시간, 전철 1호선 연천역·전곡역 개통으로 대중교통 이용까지 수월해지면서 연천은 다양한 세대·취향에 맞는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연천군이 선정한 연천 '9경(景)'을 만나보자.
◆재인폭포·주상절리…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2020년 7월 지정된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연천·포천·철원 일대의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폭포를 보존한 공원으로 연천에서는 재인폭포·임진강 주상절리 등이 대표 명소다.
차탄천 주상절리는 한탄강에서 임진강으로 흐르던 용암류가 차탄천으로 흘러 들어와 주상절리가 발달한 하식절벽이며, 임진강 주상절리는 한탄강을 따라 흐른 용암류가 임진강을 만나 역류하면서 다양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재인폭포는 북쪽 지장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약 18m 높이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폭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멸종위기종 분홍장구채의 서식지로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고 주상절리, 하식동굴, 포트홀, 가스튜브 등 다양한 현무암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더불어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현무암질 용암이 한탄강에서 급격히 식어 형성된 베개모양을 하고 있다. 행정구역을 넘나든 지질 형태로 소재지는 포천이지만 연천에서만 볼 수 있는 곳이다.
◆전곡리 선사유적지·전곡선사박물관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기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다. 1978년 주한미군 공군 그렉 보웬은 한탄강을 찾았다가 느낌이 남달랐던 돌을 봤고, 프랑스의 구석기 고고학 권위자인 프랑소아 보르드에게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 이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김원용 교수 등에 돌을 보내 조사를 요청했는데, 그 돌은 결국 약 3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주먹도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서울대박물관은 전곡리 일대에서 유물 4천500여 점을 발굴했다. 보웬이 발견한 주먹도끼는 현재 서울대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전곡리 유적공원에 발견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양면핵석기 발견은 그동안 구석기문화 이원론을 뒤집은 전 세계 고고학 학계의 대반전이었다. 이를 기념해 연천에서는 해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전후로 구석기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이 풍부해 인기가 많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연천 전곡리 유적과 연계해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시설이다. 주먹도끼를 비롯한 선사 유물과 복원 모형, 체험형 전시 등이 마련돼 있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선사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류의 이동과 생활도구의 발달, 사냥과 채집 등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줘 교육적 가치도 높다.
◆호로고루와 숭의전
임진강에 접한 높이 30m 현무암 절벽 위에 삼각형 강안평지성인 호로고루성은 당포성, 은대성과 함께 연천이 보유한 고구려 3대 성 중 하나다. 축조 방식에서 백제, 신라, 고구려 양식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으며 현재는 터와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이곳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기와편이 발굴된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다. 매년 8월 말, 9월 초에 통일바라기 축제가 열리며 활짝 핀 노란 해바라기 물결이 호로고루성을 감싸안으며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연천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은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왕들과 충신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1399년(정종 1년)에 창건된 뒤 1452년(문종 2년)에 숭의전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고려왕조에 대한 제향을 이어간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훼손됐으나 현재 복원된 상태다.
이곳에 모셔진 고려왕 위패는 태조 왕건, 현종, 문종, 원종이며 복지겸, 유금필,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김득배, 이방실, 정몽주 등 16명의 충신도 기리고 있다.
◆그리팅맨과 태풍전망대
높이 10m의 거인이 북녘 땅을 향해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유영호 작가의 조각상 '그리팅맨'. 2016년 임진강을 따라 연강 나룻길이 조성되면서 북한과 약 4㎞ 떨어진 옥녀봉에 설치됐다. 15도의 각도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가 담겼으며 서로 인사를 건네는 행위를 통해 지구촌의 소통과 화합을 추구한다.
그리팅맨이 자리한 옥녀봉은 해발 205m로 정상에 오르면 연천 전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탁 트인 풍광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풍경 맛집인 태풍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서 약 65㎞, 평양에서 약 140㎞ 떨어진 중면 비끼산 가장 높은 수리봉에 위치하고 있다.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전망대에는 분단과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시설도 있다. 망향비를 비롯해 전적비와 6·25 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어 안보 관광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연말까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새롭게 단장한 태풍전망대가 어떤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할지 기대를 모은다.
◆경순왕릉·고랑포구 역사공원·댑싸리공원
9경 이외에도 연천에는 볼거리가 많다. 통일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을 모시고 있는 장남면의 '경순왕릉(사적 제244호)'은 지정면적 1만1천777㎡, 봉분길이 7m, 높이는 3m로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도에 소재한 왕릉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도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강을 통한 물자 교류 중심 역할을 하던 나루터다. 1930년대 개성과 한성의 물자 교류로 번성했으나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쇠퇴했다. 1·21 무장공비 침투 사태로도 유명한 이곳은 고랑포구에 새겨진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생생하게 구현·재현했다.
특히 역사공원 앞에는 '레클리스' 군마(軍馬) 동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레클리스는 1952년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 대전차중대 무반동화기소대에 입대해 1953년 중공군 전투가 벌어진 연천 네바다전초전투에서 하루에 51차례 탄약은 물론 부상병까지 운반했다. 이같은 공로로 무공훈장 등 5개 훈장을 받았으며 1959년에는 말 하사관으로 진급했다.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찾는 중면 삼곶리 일원 '임진강 댑싸리 정원'은 가을여행 명소다. 군남댐 건설 후 수몰지 일대를 새로운 관광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으로 8만여㎡ 공간에 댑싸리 2만3천 본을 비롯해 백일홍, 메밀꽃, 황화코스모스 등 가을꽃이 한가득 피어 있다. 임진강 수변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오는 18일까지 개방된다.
경인일보 오연근 기자 oyk@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