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명 중 수능 만점자는 왜 면제 안 해줘요?"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나온 질문이다.
유영하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의 형평성을 지적하면서 "예술특례를 보면 주로 음악하고 무용이 돼 있다. 미술은 왜 안 해주느냐"며 "일부에서 바흐는 병역특례를 받는데 고흐는 병역특례를 못 받는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다소 자극적으로 들리는 질문이지만 병역특례 제도의 오래된 모순을 정확히 건드리는 측면이 있다. 현재 예술·체육요원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병무청이 인정한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일부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등을 기준으로 편입된다. 1973년 도입 이후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이 제도의 핵심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2026년 대한민국에서 '국위선양'이라고 부를 만한 성취는 정말 운동장과 콩쿠르 무대에만 있을까.
◆수능 만점자는 왜 안 되나
가장 먼저 나온 반례가 수능 만점자다.
매년 수십만 명이 응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 과목 만점을 받는 학생은 극소수다. 성취의 희소성만 놓고 보면 일부 국제·국내대회 입상 못지않다. 물론 수능은 국내 선발시험이고 국제 경쟁도 아니다. '국위선양'이라는 기존 특례 논리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질문이 성립한다. 병역특례의 기준이 '희소한 성취'인지, '국제대회 성적'인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올림피아드 금메달은 왜 안 되나
형평성 논쟁은 과학 분야로 가면 더 직접적이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나 국제물리·화학·정보올림피아드에서 세계 각국 학생들과 경쟁해 금메달을 따는 것은 명백한 국제적 성취다.
국가 경쟁력과의 연결성도 강하다. 반도체·AI·우주·바이오 등 첨단산업 인재 확보를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면서도 국제 과학대회 금메달은 곧바로 예술·체육요원과 같은 특례로 연결되지 않는다.
전문연구요원이라는 별도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특정 국제대회 입상 자체를 병역혜택으로 연결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기능올림픽 금메달은?…국가대표인데
국제기능올림픽도 빼놓을 수 없는 비교 대상이다.
용접·기계·전기·정보통신 등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술로 국가대표가 세계 각국 선수들과 경쟁한다. 구조만 보면 스포츠 올림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국가 산업경쟁력을 알린다는 점에서는 '국위선양' 논리를 적용하기도 쉽다.
그런데 현재 올림픽 동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체육요원 편입 대상이지만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 자체가 같은 방식의 병역특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바흐는 되고 고흐는 안 된다"…미술·문학은?
예술 분야로 가면 좀 복잡해진다.
현재 예술요원 제도는 국제 음악·무용 경연대회와 일부 국내 전통예술·미술대회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무청은 인정대회를 계속 줄여왔고, 올해 국감에서는 국제예술경연대회 편입 기준을 현행 2위 이상에서 1위로 강화하고 국내 전통예술대회 편입 인원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현대미술 비엔날레나 국제미술상, 문학상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청년 예술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음악 콩쿠르 우승은 국위선양이고 세계적 미술·문학 성취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기 쉽지 않다. '바흐는 되고 고흐는 안 된다'는 표현이 다소 과장됐더라도 제도의 장르 편중 문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BTS·그래미·아카데미는 왜 빠지나
대중문화 영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BTS(방탄소년단)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그래미어워즈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했을 때도 "클래식 콩쿠르 입상보다 국위선양 효과가 작다고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이어졌다. 칸·베를린·베니스 국제영화제나 미국 아카데미상, 그래미어워즈 같은 세계적 대중문화 성취를 병역특례 대상으로 볼 것인지도 같은 문제다.
결국 정부는 당시 BTS를 별도 특례대상으로 확대하지 않았고, 멤버들은 순차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e스포츠는 체육인가 게임인가
e스포츠는 이미 논쟁을 현실로 만들었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되면서 e스포츠 금메달리스트도 다른 종목 선수와 마찬가지로 체육요원 편입이 가능해졌다.
과거라면 '게임이나 하던 아이'라는 편견을 받던 분야가 이제는 국가대표가 출전하는 정식 국제 스포츠가 됐고, 금메달을 따면 병역특례까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같은 또래의 '공부 잘하는 아이'가 수능 만점을 받아도 병역특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유영하 의원의 수능 만점자 발언과 나란히 놓고 보면 시대 변화가 더 선명해진다. 무엇을 '국가적 성취'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기준 자체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아시안게임은 빼고 올림픽 금메달만?
체육특례 자체를 줄이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제도는 올림픽 3위 이상과 아시안게임 1위를 체육요원 대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이후 일부 선수의 병역혜택 관련 언행이 논란이 되면서 제도 축소론이 다시 거세졌다. 국방부는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제도의 단계적 감축과 궁극적 폐지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아시안게임 특례는 없애고 올림픽만 남기자는 주장부터, 올림픽도 금메달만 인정하자는 의견, 아예 예술·체육 특례 전체를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병무청은 우선 예술 분야의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국제예술경연대회는 현행 2위 이상에서 1위 입상으로 좁히고, 국내 전통예술대회 역시 대회별 편입 인원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체육 분야는 11월 나오는 정책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기준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다.
예술 분야에서 시작된 기준 강화가 체육으로 이어지고, 이후 병역특례 제도 전체의 재설계로까지 확장될지 주목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좋은 제도로 정착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