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역' 추진, 다음 후보는? 안중근·유관순·김구부터 이승만·박정희·YS·盧까지…대구는 한발 늦었다? [시사뒷담]

입력 2026-10-12 0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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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품은 이소선 여사. 매일신문DB
전태일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품은 이소선 여사. 매일신문DB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 '전태일역'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는 방안이 추진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공개된 연합뉴스 인터뷰(8일 진행)에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일인 11월 13일에 맞춰 종로3가역에 '전태일역' 또는 '전태일기념관역'을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태일기념관이 종로3가역과 가까운 데다, 전태일 열사를 노동운동이라는 특정 영역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보다 친숙한 역사 인물로 알리자는 취지다.

인터뷰 내용 중 눈길을 끈 대목은 김영훈 장관이 "전태일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어둬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넓혀볼 수 있다. 전태일의 이름을 지하철역에서 만날 수 있다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역 이름으로 더 기억할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한두명, 두어명보다는 여럿이면 꽤 근사하지 않을까?

◆사람 이름 붙은 역은 이미 있다

사실 사람 이름을 역명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경춘선 김유정역은 2004년 기존 신남역의 이름을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국내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정식 역명으로 사용한 사례가 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은 '낙성대(강감찬)역'으로 강감찬 장군의 이름을 함께 쓰고 있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딴 '매헌'이 병기돼 있다.

전남광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김대중컨벤션센터와 연결된 김대중컨벤션센터역도 있다.

따라서 전태일역 논의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전태일 열사. 매일신문DB
전태일 열사. 매일신문DB

◆그런데 '역명 병기'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명 병기 상당수는 역사 기념사업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재정 확보를 위해 역 주변 기업·기관에 일정 기간 역명 병기 권리를 판매하고 있다. 가령 종각역에 SC제일은행, 을지로입구역에 하나은행처럼 기업이나 기관 이름을 함께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통상 계약 기간은 3년이며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돈을 내고 일정 기간 이름을 사용하는 일종의 광고·안내 사업이다.

따라서 전태일처럼 역사적·공공적 의미를 이유로 추진되는 명칭과 이런 유상 병기를 같은 걸로 봐서는 안 된다.

구미 사곡역 전경. 구미시 제공
구미 사곡역 전경. 구미시 제공
봉하마을 인근 진영역. 연합뉴스
봉하마을 인근 진영역. 연합뉴스

◆이미 논쟁은 있었다…'박정희생가역'과 '노무현역'

실은 인물 이름을 역에 붙이는 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 번진 전례도 있다.

경북 구미시는 대경선 사곡역을 '박정희생가역'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역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구미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의견이 80%를 넘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봉하마을 진영역이 노무현생가역이 아니듯 박정희생가역도 안 된다"는 취지로 반대했고, 윤상현 의원은 오히려 "둘 다 하는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맞섰다.

◆전태일 다음이라면…누구 이름을 남길까

만일 전태일역을 계기로 같은 근현대사의 위인들을 지하철역 이름으로 삼는 분위기가 짙어진다면, 어떤 위인을 모시는 게 좋을까?

이미 역명에 등장하는 인물은 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부터 보면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 안창호 선생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서울 남산에 있어 회현역과 연결할 수 있고,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 묘역과 백범김구기념관이 있어 효창공원앞역과 역사적 연결고리도 뚜렷하다.

유관순 열사는 서울 중구 정동의 이화학당과 직접 연결된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에서 공부했고, 현재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정에는 유관순기념관과 유관순 동상이 있다. 위치상 시청역·서대문역·정동 일대와의 연계가 가능하다. 안창호 선생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과 연결된다. 도산공원에는 안창호 선생과 부인 이혜련 여사의 묘소, 도산안창호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 압구정로데오역·강남구청역 등과 공간적 연결고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민주화 역사에서는 박종철 열사도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영역 바로 인근에 있고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의 또 다른 상징인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학교와 신촌이라는 공간적 연결이 있다.

다만 유관순 열사는 특정 역과의 거리상 연계가 안중근·김구·박종철만큼 직관적이지는 않고, 안창호 선생은 도산공원이라는 상징 공간 자체가 워낙 강해서 오히려 '도산공원 인근 역'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자연스럽다.

역 이름을 단순한 지명표시가 아니라 도시 곳곳에 놓인 '작은 역사 표지판'으로 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인물들이다.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매일신문DB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매일신문DB

아무래도 가장 논쟁적인 영역은 전직 대통령들이다. 김대중컨벤션센터역의 주인공 김대중 전 대통령 말곤 신규 대상이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한민국 현대사의 방향을 크게 바꾼 인물들을 역 이름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크게 갈릴 수밖에 없다.

체급이 상대적으로 큰 인물들인 만큼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은 지하철역보다 더 규모가 큰 국제공항 이름으로도 거론돼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5년 말 광주 군·민간공항의 무안 통합 이전 논의 과정에서 나온 '김대중 공항'이다. 광주시·전남도·무안군 등이 통합 이전에 합의하면서 공항 명칭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김대중 공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구상은 사실 더 오래됐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21년 대선 공약으로 대구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 가덕도신공항을 '김영삼 공항', 무안공항을 '김대중 공항'으로 명명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세 대통령의 출신 지역과 지역 거점공항을 연결하겠다는 취지였다. 가덕도신공항을 두고도 '노무현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정치권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2020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민주당 일각의 '노무현 공항' 구상을 비판하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오히려 '가덕도 노무현 국제공항'이라는 명칭을 공개 제안했다.

해외에서는 샤를 드 골 국제공항,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처럼 국가 지도자 이름을 공항에 붙인 사례가 흔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전직 대통령 이름이 정식 공항명으로 채택된 사례는 없다.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건국·산업화·민주화의 상징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역사적 인물들이다. 그래서 역 이름에 인물을 넣는 문제는 단순한 명칭 변경보다 훨씬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참고로 공항은 수가 제한적인 데다 신설·이전부터 명칭 확정까지 막대한 시간과 비용,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반면 지하철역은 기존 역명 변경이나 병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어, 인물 이름을 공공공간에 남기는 논의와 절차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역 이름은 결국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의 선택

지하철역 이름은 매일 수십만명이 보고 듣는다. 교과서보다 자주 접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이름을 역에 붙이는 것은 단순한 길찾기 편의를 넘어 그 인물을 도시의 기억 속에 남기는 행위가 된다.

전태일역 추진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앞으로 서울시와 운영기관 등의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 다만 논의가 시작된 것만으로도 질문 하나가 도출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나온 수많은 인물 가운데, 시민들이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여행을 떠날 때 매일 한 번씩 이름을 마주쳤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전태일역'이 추진될 경우 그 다음 이름도 고를 수 있다면, 독자님의 선택은 누구입니까?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 전경. 김도훈 기자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 전경. 김도훈 기자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 전경. 김도훈 기자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 전경. 김도훈 기자

※PS. 대구가 한발 늦었다?…명덕역은 오히려 '3개 이름' 품을 수도

대구경북 독자라면 마지막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지점이 있다. 전태일 열사의 옛집은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고, 바로 인근에는 대구도시철도 1·3호선 환승역인 명덕역이 있다.

그런데 명덕역은 이미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라는 부역명을 함께 쓰고 있다. 즉 '명덕'이라는 지명에 대구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이미 덧붙어 있는 역이다.

여기에 전태일까지 더하는 건 어떨까. 낯선 방식이 전혀 아니다. 서울 종로3가역 역시 1·3·5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인데, 5호선에는 '탑골공원'이라는 병기역명이 따로 붙어 있다. 환승역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도 노선별 특성과 주변 역사·문화 자원을 반영해 이름을 변주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명덕역도 '명덕'이라는 지역명,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라는 민주화의 기억, 그리고 바로 인근 전태일 옛집을 연결하는 '전태일'까지 세 겹의 이름과 기억을 품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서울 종로3가역이 먼저 '전태일역'을 꺼내든 상황이지만, 전태일의 결코 짧지 않은 삶의 흔적이 남은 대구라면 단순히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환승역의 구조를 활용해 더 풍부한 방식으로 이름을 남길 여지도 있는 셈이다.

전태일 열사 옛집 위치. 오른쪽에 2.28민주운동기념회관과 대구 도시철도 1·3호선 명덕역이 있다. 네이버 지도
전태일 열사 옛집 위치. 오른쪽에 2.28민주운동기념회관과 대구 도시철도 1·3호선 명덕역이 있다. 네이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