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이파리"

입력 2026-10-30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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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일정(一鼎) 이창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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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금융·보험·여행주 '추풍낙엽'

미그-29, 국산 KF-21 앞선 '추풍낙엽'

'추풍낙엽(秋風落葉)'은 "가을 추, 바람 풍, 떨어질 낙, 이파리 엽"으로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어떤 세력이나 세태가 힘을 잃고 급격히 몰락하는 현상을 비유한다.

즉 '권력이나 정치 세력의 급격한 몰락', '법적 처벌과 사정 정국의 효과', '경제적 위기와 기업·증시의 급락',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추세의 변화)'을 가리킨다. 한·중·일에서 다 사용하며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과 상반되는 뜻이다.

'추풍낙엽' 하면 예전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여기를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해서 피했다는 추풍령도 생각난다. 가을바람엔 역시 "섬돌 앞의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낸다"(階前梧葉已秋聲)처럼 낙엽 지는 소리가 으뜸.

게다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 '으악새(=억새) 슬피 우는 소리'도 빠질 리 없다. 가을엔 "간다고 서럴(서러워를) 마소… 추풍낙엽 휘돌아 치는…"(이화자 「추풍낙엽」. 1940) 같이 서러움을 담은 노래도 허다하다.

이파리가 있는 한 떨어질 건 정해진 이치라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때맞춰 떨어져 내려 뿌리로 돌아가는 게 대자연의 순리 아닌가. '낙엽'은 모든 걸 휩쓸어 버리는 거대한 기운을 상징한다.

'추풍낙엽'은 중국 당나라 번성기의 시인 이기(李頎, 690~751)가 지은 「행로난(行路難)」에 "추풍낙엽폐중문(秋風落葉閉重門: 추풍낙엽에 겹겹이 닫힌 문)"으로 처음 보인다. 이후 남송의 홍매(洪邁, 1123~1202)가 엮은 『이견을지(夷堅乙志)』에 화려한 권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허망함을 노래할 때 쓰였다.

"금빛 굴레와 털 안장을 한 명마들이 빛을 내며 저잣거리를 환하게 비추지만, 3년 뒤에는 절뚝거리는 나귀 한 마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추풍낙엽'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거로구나."

추풍낙엽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여러 자료에도 등장한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1328~1396)은 "인청추풍낙엽성(忍聽秋風落葉聲: 추풍낙엽 소리를 차마 듣는단가)"(『목은시고』제6권)이라고 했다.

세월을 건너뛰어 근대기에도 자주 보인다. 권배근(權培根)은 「노자의 유토피아」(『삼천리』제10권 제1호/1938.1.1.)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인류의 아름다운 몽상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이 되었다… 아, 괴롭다! 어디로 갈 거냐?… 그렇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대사상가 노자(老子)의 말이다."

맞다. 추풍낙엽은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만물의 진풍경이다. 이 점을 잘 짚은 것이 농암 이현보였다. "추풍낙엽합귀근(秋風落葉合歸根: 추풍낙엽은 마땅히 뿌리로 돌아간다네"( 『농암집』제1권). 이를 이어받아 퇴계 이황은 "귀근낙엽진상리"(歸根落葉儘常理: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 영원한 이치이거니!"라고 하였다.

고정불변이란 없다. 아름답든 추하든 귀하든 천하든, 어느 하나 추풍낙엽의 처지를 피해 갈 수 있을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 이렇듯 추풍낙엽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가가 관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