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석 (계명대 명예교수,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회장)
글로벌 컨테이너해운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 대형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5위 독일 선사인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세계 10위 이스라엘 선사 ZIM을 약 4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선사 간 초대형화 경쟁이 재점화됐다. 인수가 승인되면 하팍로이드의 선복량은 309만 TEU로 늘어나며, 세계 비중은 8.9% 수준으로 높아진다.
현재 컨테이너해운 시장은 3대 얼라이언스와 단독 운항사인 MSC가 주도하고 있다. CMA CGM·코스코·에버그린의 '오션 얼라이언스'는 1천10만 TEU로 세계 선복량의 29.3%를 차지한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의 '제미니 협력체(Gemini Cooperation)'는 713만 TEU로 20.6%를, ONE·HMM·양밍이 참여하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는 398만 TEU로 11.5%를 점유한다. 세계 1위 선사인 MSC는 745만 TEU로 세계 선복량의 21.6%를 보유하고 있다.
선사의 초대형화가 진행되는 배경은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기의 상시화, 운임 변동성 심화,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친환경 전환 비용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10대 선사의 시장점유율은 2016년 74%에서 2026년 85% 수준으로 높아졌다. 300만 TEU 이상을 보유한 선사도 1개사에서 4개사로 늘었으며,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5개사가 된다.
하팍로이드의 ZIM 인수는 단순한 선복량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ZIM이 경쟁력을 가진 북미동안, 지중해, 남미 특화 항로가 하팍로이드의 서비스망에 편입되면 '제미니 협력체'의 서비스 다양성과 완결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는 화주 유치 경쟁과 얼라이언스 간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규모와 항로 다양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얼라이언스 경쟁력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서비스 안정성과 항로 유연성 확보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거래의 최대 변수는 이스라엘 정부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 안보와 경제적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를 보유하고 있다. ZIM을 일반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가 공급망과 안보를 뒷받침하는 전략 자산으로 판단할 경우, 인수 승인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국방부와 노동계가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팍로이드는 이를 의식해 ZIM의 일부 기능을 분사해 이스라엘에 남기고, 주요 교역국과의 직항 서비스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세계 50위권 수출국인 이스라엘조차 자국 선사의 전략적 가치와 공급망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6위권 수출국인 한국은 유일한 글로벌 국적 선사인 HMM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HMM을 재무적 자산으로만 다루는 접근은 장기적으로 국가 공급망의 안정성과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하팍로이드의 성장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팍로이드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었지만,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전환했다. 2014년 칠레 CSAV, 2017년 아랍에미리트 UASC를 인수하며 선대와 항로 네트워크를 확대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글로벌 초대형 선사로 도약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계 물류기업 퀴네앤드나겔의 대주주인 클라우스미하엘 퀴네의 개인적인 역할도 컸다. 그는 하팍로이드가 해외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 투자회사를 통해 지분 30%를 인수했다. 이는 단순한 재무 투자가 아니라 독일의 글로벌 선사를 유지·성장시키기 위한 장기 자본의 역할이었다.
HMM의 매각에도 이 같은 시각이 필요하다. HMM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본다면, 핵심 과제는 '얼마에 매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103만 TEU 규모의 선사를 글로벌 해운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인수 주체 역시 해운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공급망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고 장기 투자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해운업계는 '민관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실질적인 성장 전략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해운선사의 본사 이전과 같은 비본질적인 논쟁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