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는 '임명권 절제', 曺는 '정파성 경계'…68년 전 '제청충돌'의 교훈 [시사뒷담]

입력 2026-09-23 0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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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권과 임명권을 두고 정면으로 맞선 현재 상황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이 최고법원 인사 문제를 두고 충돌하는 장면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꽤 닮은 장면이 발견되고, 마지막 순간 정면충돌을 피한 사례도 나온다. 역사는 반복됐고, 각각 다른 결말은 현재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진다.

◆1958년 이승만, 제청받은 대법원장 임명 거부

가장 닮은 장면은 68년 전이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퇴임한 뒤 당시 법관회의는 김동현 전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제청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8년 1월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는 취지의 문서를 보냈고, 나아가 자유당 경북도당위원장이던 이우익을 제청해달라고 요구했다. 법관회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같은 달 조용순 전 대법관을 다시 제청했다. 오늘날 표현을 빌리면 대통령의 첫 제청 거부에 이어 실제 '재제청'까지 이뤄졌던 셈이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유당이 법관회의의 대법원장 제청권을 없애는 법원조직법 개정까지 추진했으나 법조계 반발 속에 철회됐고,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그해 6월 조용순 후보를 제2대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1950년 7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대구 임시국회의사당(구 한일극장)에서 열린 제8회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매일신문
1950년 7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대구 임시국회의사당(구 한일극장)에서 열린 제8회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매일신문

따라서 이 결말을 '대통령의 승리'라고 단순히 정리하기는 어렵다. 이승만 대통령은 최초 제청된 김동현 후보의 임명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이 요구한 이우익을 대법원장으로 앉히지는 못했다. 사법부 역시 이우익 제청 요구를 거부했고 법관회의의 제청권 자체도 지켜냈다. 관련 연구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가 "일단 저지됐다"고 평가한다.

다만, 그때와 지금을 같은 조건으로 볼 순 없다. 1958년은 현행 헌법 체제가 아니었고 갈등의 대상도 대법관이 아니라 대법원장이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제청한 인사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인물을 요구했다'는 구조만 놓고 보면 이번 사태와 가장 가까운 역사적 장면이다.

2005년 9월 23일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퇴임하는 최종영 전 대법원장에게 서훈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2005년 9월 23일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퇴임하는 최종영 전 대법원장에게 서훈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2003년 노무현-최종영, 충돌 직전 대통령이 수용

1987년 개헌으로 마련된 현행 헌법, 즉 제6공화국 헌법 체제에서도 비슷한 긴장감이 나온 바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최종영 대법원장이 서성 대법관 후임을 찾는 과정에서 청와대는 후보들의 개혁성 등을 문제 삼으며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최종영 대법원장은 기존 후보군에서 김용담 광주고법원장을 제청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에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실제 거부까지 가진 않았다. 헌법기관끼리 정면으로 권한의 한계를 시험하기 전에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면서 충돌을 피한 것이었다.

2011년 9월 26일 청와대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2011년 9월 26일 청와대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2009년 이명박-이용훈, 제청 지연됐지만 봉합

2009년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이용훈 대법원장이 김용담 대법관 후임 인선을 놓고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가 후보군을 선정하면 통상 2~3일 안에 제청이 이뤄졌지만 당시에는 2주 넘게 지연됐다. 대법원은 인사 검증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 의견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결국 민일영 청주지법원장을 제청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결국 이때도 '제청→대통령 거부→재제청 요구'라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2022년 8월 15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77주년 광복절 경축식 종료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8월 15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77주년 광복절 경축식 종료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윤석열-김명수도 '임명 거부' 가능성만 수면 위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을 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현 청와대)과 긴장이 형성됐다.

당시 대통령실이 특정 후보가 제청될 경우 임명을 거부할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일었다. 법원 내부에서도 대통령실의 '임명 거부 예고'가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공개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권영준 서울대 교수와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했고 이후 임명 절차가 진행됐다. 당시에도 대통령의 실제 임명 거부까지 현실화하지는 않았다.

◆과거엔 '갈등' 수준, 이번엔 아예 '권한 충돌'

이들 사례를 나열하면 2026년과의 차이가 보인다. 1958년엔 실제 제청 거부가 있긴 했지만 지금과 헌법·제도가 달라 단순 비교는 할 수 없다.

반면 현행 헌법 아래서 2003년, 2009년, 2023년엔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 긴장이 고조돼도 정식 제청 이후 대통령이 이를 돌려보내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2026년에 그 마지막 안전판이 작동하지 않은 맥락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후보자를 제청했고, 이재명 대통령 측은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내지 않은 채 재제청을 요구했다.

이에 직접 반응은 하지 않던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거부 의사를 수면 위로 드러냈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대 대통령의 임명권 충돌이 가능성을 넘어 실제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동안 서로 갖고는 있어도 실제 사용하지 않았던 카드를 하나씩 꺼내든 만큼, 앞으로는 한쪽의 대응이 또 다른 전례 없는 대응을 부르는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성수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성수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과거가 이재명 대통령·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던지는 두 질문

과거 사례가 던지는 경고는 한쪽에만 향하지 않는다. 1958년 사례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앞세워 다른 인물의 제청을 요구할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사실상 압박하거나 종속시키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편에도 질문은 남는다. 2003년과 2009년, 2023년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인선을 놓고 이견을 보였어도 끝내 정치적 정면대결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공개적인 재제청 거부와 청와대의 "헌법 위배" 반박에 여야까지 가세하면서 사법부 수장의 판단이 정파적 대결 한복판에서 해석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남는 질문은 '임명권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가'이고,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남는 질문은 '제청권을 지키면서도 정치적 대결과 얼마나 거리를 둘 수 있는가'이다.

헌법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며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권한을 나눴다. 그래서 과거 사례에서 배울 대목은 두 헌법기관 책임자의 '헌법적 자제'일 수 있다. 권한이 없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상대의 영역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절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