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부터 30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
깊고 푸른 고요함이 캔버스를 채운다.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과 달, 거대한 손 위에 올려진 집과 나무. 마치 성화(聖畵)와 같은 그의 그림은, 초자연적인 거대한 온기가 모든 것을 품고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듯하다.
김영환 작가는 템페라 기법으로 자신만의 '조용한 풍경'을 담아낸다. 템페라는 아교나 계란 등에 안료를 혼합해 만든 물감이다. 색의 농도나 혼합 방식, 건조 속도 등을 다루는 과정이 유화나 아크릴에 비해 번거롭고, 그만큼 상당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기법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색이 자칫 탁해질 수 있기에 점을 찍듯이 올리고 긁어낸 뒤 또 올리는 과정을 반복한다"며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풍화된, 거친 돌의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템페라는 색이 반사되지 않기에 오래 들여다봐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색이 밖으로 겉도는 게 아니라 안으로 스며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익어가며 더욱 깊어지는 것도 묘미"라고 설명했다.
수없이 색을 올리고 긁어내며 그는 자신만의 온도를 찾는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푸른색의 온도. 작가만의 '블루'는 하늘이자 바다, 우주로 무한히 확장한다.
그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의 안식처와 자연을 따뜻하게 품은 거대한 손이다.
"독일 유학생활 시기에 손을 다쳤는데, 내 손이 너무 불쌍하고 소중해보여서 테라코타로 손을 빚었어요. 그게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손은 우리가 반갑게 악수를 하며 온기를 나누는 소통의 매개이자, 전통 성화에서는 구원과 축복을 상징하죠. 작품 속의 손 역시 인간과 집을 보호하는 신의 손이자 하나의 지구, 대지가 품은 생명 자체를 의미합니다."
손 위에 올려진 집에서는 작가의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저녁, 옛 시골길을 걷다 마주하는 집의 불빛, 그곳에서 새어나오는 밥 냄새와 같은 그리움. 그는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집이 각자의 고향이 될 수도 있고, 믿음을 품은 하나의 성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도상들이 등장하지만 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작가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작품이 형식화되는 것을 항상 경계한다고 강조했다. 작품 속 달이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밝고 큰 보름달로, 때로는 아주 작게 표현되는 이유다.
최근의 작품은 은은한 초록빛이 감돈다. 작업실이 있는 청도의 풍경이다. 뿌연 운무가 낀 이른 아침, 태양이 뜨면서 비치는 오묘한 색을 캔버스에 옮겼다. 뿐만 아니라 연둣빛 새싹이 올라오는 봄, 흰 눈으로 덮인 겨울 등 계절의 변화에서 느낀 감성을 담아낸다.
독일 유학시절,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듯 그림을 그렸던 그는 지금도 매일 그 루틴을 이어나간다. 오늘의 그림은 내일 그림의 소재가 되고, 서사는 한 층씩 쌓여나간다. 그에게 작업은 단순히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신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한계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우리 삶이 계속 이어지듯, 제게는 이 그림이 여기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안들면 다시 물감을 올리기도 하고, 다음 작품에서 내가 조금 더 나아간 모습을 옮겨보기도 하죠. 하루하루 레벨을 높여가며 작품 속 얘기를 확장해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김영환 작가의 개인전 '조용한 풍경'은 오는 30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대구 동구 효신로 30)에서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