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은 AI의 두뇌를 만들고, 중국은 그 두뇌가 움직일 몸체를 만들며,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 만들어야 한다."
다소 단순한 비유지만 지금 세계 산업의 변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AI Index 2026'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은 주목할 만한 AI 모델 59개를 개발해 중국의 35개보다 앞섰고, 민간 AI 투자도 2천859억 달러로 중국의 124억달러보다 23배 많았다. 반면,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은 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의 54%인 약 29만5천대를 차지했다. 미국이 AI의 두뇌를 중심으로 경쟁을 주도한다면 중국은 AI가 현실에서 움직이는 제조와 로봇 생태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할까?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제조업의 강점을 AI 시대에 맞게 다시 연결해야 한다. AI 로봇에는 반도체, 센서, 모터, 감속기, 제어기, 배터리, 정밀소재 등 수많은 핵심부품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제조현장의 로봇 활용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전자·기계·소재 분야에서도 상당한 기술과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다. 국제로봇연맹 기준,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1천12대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특히, 대구경북에는 의미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대구의 로봇과 미래모빌리티, 구미의 전자와 반도체, 포항의 이차전지와 소재산업을 연결한다면, AI 로봇 시대에 필요한 핵심부품과 모듈, 실증과 사업화로 이어지는 산업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을 이끌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이다.
그래서 대학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지식의 검색과 정리뿐 아니라 분석, 번역, 글쓰기, 설계까지 빠르게 지원하는 시대에 대학이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대학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그것을 활용해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AI 교육도 Chat GPT 사용법이나 프롬프트 작성법을 익히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AI를 활용해 로봇 부품을 설계하고, 전자공학 전공자는 센서와 제어시스템을 개발하며, 경영학 전공자는 고객과 시장을 분석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대학과 지역기업이 실제 현장의 문제를 함께 제시하고 학생들이 문제발견, 설계, 시제품 제작, 실증, 사업화까지 경험하는 교육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 기술 활용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AI가 제시하는 결과를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인지,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어디까지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효율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좋은 선택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의 결과가 사람과 조직,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인문학 교육의 의미가 커진다.
철학은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하고, 역사는 현재의 현상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하며, 문학은 다른 사람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게 한다. 사회과학은 개인과 조직, 시장과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인문학은 AI와 경쟁하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외우는 교육이 아니다. AI가 제시하는 결과의 의미와 맥락을 살피고, 인간과 사회의 관점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AI 교육을 단순한 기술 활용교육으로만 접근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OECD와 유럽연합이 2026년 제시한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도 AI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과 함께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윤리적·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역량은 AI를 많이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AI를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과 결합해 책임 있게 활용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대학 교육도 이제 'AI+전공+인문학'의 결합으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초역량을 갖추고, 자기 전공의 전문성과 결합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며, 그 결과가 인간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머리는 차갑게 AI와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슴은 따뜻하게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며, 손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AI에게 모든 답을 맡기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AI가 제시한 결과의 의미와 맥락을 살피며, 자신의 전문성과 가치 판단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선택과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다.
대구경북의 대학이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 역량을 지역의 탄탄한 제조기반과 연결한다면 AI 시대는 지역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강조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