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2>우리 시대의 장승업인 '금세오원' 이용우의 원숭이그림

입력 2026-09-16 1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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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이용우(1902~1952),
이용우(1902~1952), '원숭이', 종이에 채색, 54×57㎝, 개인 소장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지만 생김새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9번째로 일찍부터 한국미술사에 등장한다. 김유신묘의 둘레돌(護石) 십이지신상이 유명하다. 12 방향에서 촘촘하게 지켜주는 신장(神將)이라고 믿었다. 각자의 띠로 친숙한 십이지신은 얼굴은 동물, 몸은 사람인 수면인신(獸面人身)의 반인반수이다.

예술적 상상력과 공예 솜씨가 뛰어났던 고려의 도공들은 청자에 사람을 꼭 닮은 원숭이 형상을 유머러스하게 활용했다. 국보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을 비롯한 연적, 먹을 담는 자그마한 묵호, 청자 도장인 도인(陶印) 등이 있다. 조선시대 원숭이 그림은 숙종 때 양반화가인 취은(醉隱) 정유승의 '군원유희(群猿遊戱)'가 있고, 오원(吾園) 장승업이 즐겨 그렸다.

묵로(墨鷺) 이용우의 '원숭이'는 장승업과 견주려는 뜻이 있었을 것 같다. 왜냐면 어느 해 설날 육당(六堂) 최남선 댁에 세배하러 갔다가 최남선이 보여준 옛 그림에 화흥(畵興)이 일어나 즉석에서 다락문 네 짝에 매화를 그려 최남선으로부터 "금세오원(今世吾園)", 곧 우리 시대의 장승업이라는 찬탄을 받은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용우는 '그림의 신동'이었다. 만 9세에 서화미술회강습소 1기생으로 입학해 20대 청년들과 나란히 배웠고, 17세에 서화협회 최연소 정회원이 됐으며, 19세에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창덕궁 벽화를 그리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1922년)에서 4등상을 수상하며 안중식 문하의 3총사로 불렸던 이상범, 노수현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데뷔했다.

1940년 조선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 '조선 10명가 산수풍경화전'을 열었을 때 고희동,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한복, 이상범, 최우석, 노수현, 변관식과 함께 초대된 '10대가'이다.

이용우는 스승 안중식에게 춘전(春田)으로 호를 받았으나 나중에 스스로 지은 묵로(墨鷺)로 바꾼다. 묵로는 검은 먹처럼 '검은 해오라기'인 흑로라는 뜻이다. 해오라기는 원래 백로(白鷺)이지 흑로는 없다. 이용우는 돌연변이로나 가능한 흑로인 묵로로 개호(改號)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호로 뽐냈다. 화폭의 왼쪽 위에 독특한 필치의 '묵로' 서명이 있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