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등 끈 채 고속도로 질주, 인지거리 10m로 급감 신차만 자동점등 의무, 기존 차종은 내년 8월까지 유예
새벽 고속도로에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두 끈 채 달리던 차량이 차로를 급하게 바꿨다. 뒤따르던 승용차가 이를 피하지 못하고 부딪쳤고, 차량은 중앙분리대까지 밀려났다. 등화를 켜지 않아 어둠 속에 묻힌 이른바 '스텔스 차량'이 만든 사고다.
올해 추석 연휴는 야간 이동이 특히 몰린다. 국토교통부가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추석 민생안정대책에 따라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고속도로 통행료가 전액 면제된다. 법정 3일에 하루가 더해진 조치다. 통행량이 늘고 밤길 주행이 길어질수록 스텔스 차량과 마주칠 확률도 함께 커진다.
◆ 이달 1일 신차 오토라이트 의무화, 그러나 기존 차는 열외
국토교통부는 관련 규칙을 고쳐 2026년 9월 1일 이후 제작·수입되는 신차에 전조등·후미등 자동 점등을 의무화했다. 주행 중 운전자가 라이트를 임의로 끌 수 없도록 하는 장치 기준도 함께 들어갔다.
문제는 적용 범위다. 이 기준은 이미 도로를 달리는 기존 등록 차량에는 소급되지 않는다. 이미 생산 중인 기존 차종 모델도 2027년 8월 31일까지 적용이 유예된다. 올해 추석 도로 위 대다수 차량은 여전히 직접 스위치를 돌려야 불이 켜진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조치가 자동차 기술 발전과 연계해 안전기준을 강화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다. 다만 효과가 도로 전체로 퍼지는 데는 차량 교체 주기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 야간 치사율 주간의 1.6배, 인지거리는 10m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 분석을 보면 야간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주간보다 약 1.6배 높다. 어두워지면 사고 자체보다 사고의 결과가 나빠진다는 뜻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분석에 따르면 등화를 켜지 않은 차량에 대한 뒤차 운전자의 인지 거리는 10m 안팎까지 떨어진다.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10m는 제동을 시작할 시간조차 없는 거리다.
공단 연구에서 주간주행등만 켠 상태의 보행자 식별거리는 16m였다. 하향등은 30m, 상향등은 81m로 나타났다. 2015년 실험에서는 앞차 제동등 고장 시 뒤차의 인지 반응이 0.3초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계기판이 밝아서 못 느낀다… 2015년 주간주행등이 만든 착시
스텔스 주행은 대부분 고의가 아니다. 2015년 주간주행등 의무화 이후 시동만 걸면 앞쪽 등이 켜지지만, 후미등은 운전자가 스위치를 조작해야 들어오는 구조인 차량이 많다.
여기에 디지털 계기판이 겹친다. 계기판이 늘 환하게 켜져 있어 운전자는 등화를 켰다고 착각한다. 앞이 잘 보이니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정작 뒤에서 오는 차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은 주간주행등과 계기판 불빛만 믿고 야간 고속도로에서 후미등을 끈 채 달리다 추돌 위험을 부르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야간 고속도로 차로 경계에 미등을 끈 채 서 있던 차량을 뒤차가 들이받은 사고, 등화 없이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뒤차가 발견하지 못해 벌어진 인명사고도 같은 유형이다.
◆ 범칙금 2만원에 벌점 0점, 안전띠 미착용보다 싸다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야간이나 악천후에 등화를 켜지 않으면 승용차·승합차는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된다. 이륜차와 자전거는 1만원이다. 근거는 도로교통법 제37조다.
벌점은 없다. 같은 시행령에서 안전띠 미착용 범칙금은 3만원이다. 대형 추돌을 부를 수 있는 행위의 제재가 안전띠를 매지 않은 것보다 가벼운 셈이다. 교통안전 시민단체와 법조계에서는 위험성 대비 제재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사고가 나도 책임 배분은 크지 않다. 손해보험협회 기준에 따르면 야간 후미등 미점등 차량 추돌 시 앞차 과실은 통상 20% 수준으로 인정된다. 기본 과실은 뒤차 80%다. 다만 고속도로에서는 앞차에 20~30%의 과실이 가산되며 중과실로 판단되기도 한다.
◆ 전기차 원페달 감속도 제동등 기준 신설
이번 개정에는 전기차 관련 기준도 들어갔다. 회생제동으로 감속도가 초당 1.3m 이상일 때 제동등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한 규정이다.
가속 페달에서 발만 떼도 차가 크게 감속하는 원페달 주행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제동등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뒤차가 감속을 읽지 못해 생기는 추돌을 막기 위한 조치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이번 안전규칙 개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존 등록 운행차량은 전국적으로 2,600만여 대에 이른다. 자동점등 의무화가 시작됐지만 기존 차량은 소급 대상이 아니다. 운전자가 직접 켜지 않는 한 무방비로 남는다. 제도 효과가 퍼지기까지는 기존 차량의 자연스러운 폐차와 교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등화를 켜지 않는 근본 원인으로 도심의 인공조명과 기술적 착시를 꼽는다.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주간주행등이 켜져 있고 도심 조도가 밝아 시야 확보에 지장이 없다 보니, 본인이 전조등을 안 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그대로 운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운전자는 전방 시야에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지만 뒤따르는 차량에는 위험 요인이 된다.
야간 주행 중 전조등과 미등을 켜지 않는 행위는 다른 경범죄 처벌 수위와 견줘도 형평성 논란을 부른다. 도로교통법상 등화 불이행 범칙금은 2만원으로 노상방뇨 범칙금 5만원보다 낮다. 대형 추돌을 부를 수 있는 위법 행위의 제재 수준이 길거리 무단 방뇨 처분보다 가볍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단속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정 제재 수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도로교통법 제37조 위반으로 범칙금 2만원 부과 대상"이라며 "안전띠 미착용도 3만원인데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범칙금 자체가 높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규정은 적발되더라도 벌점이 부과되지 않아 안일한 인식을 심어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도로 위에서는 어둠 속에 방치된 무점등 차량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중대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야간 고속도로 차로 경계선에 미등을 끈 채 서 있던 음주 차량을 뒤따르던 승용차가 들이받는 추돌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등화가 꺼진 상태에서는 앞선 물체를 발견해도 제동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 큰 피해로 이어진다.
◆ 출발 전 스위치 한 번, 휴게소에서 등화 점검
올해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9월 24일 0시부터 27일 자정까지 적용된다. 새 안전기준은 이달 1일 시행됐지만 기존 생산 차종에 대한 유예는 2027년 8월 31일 끝난다. 중·대형 화물·특수차의 후부안전판 강화 기준은 2028년 6월 5일 시행된다.
그때까지 기존 차량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출발 전 라이트 스위치를 오토(AUTO)나 점등 위치에 두고,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차 뒤로 돌아가 후미등과 제동등이 들어오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