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2차사고 치사율 6배… 도로 위 실랑이가 목숨 앗는다

입력 2026-09-16 20: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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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고속도로 사망 784명 중 138명이 2차사고 과실비율 포털 개편, 분심위 합의율 90%·평균 66.9일

16일 오후 3시께 서울 강서구 개화동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서울 방향 개화터널 인근을 달리던 1t 화물차에서 불이 났다. 화물차의 적재함에서 발생한 화재로 운전자 1명이 대피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3시께 서울 강서구 개화동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서울 방향 개화터널 인근을 달리던 1t 화물차에서 불이 났다. 화물차의 적재함에서 발생한 화재로 운전자 1명이 대피했다. 연합뉴스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둔 차 옆에서 두 운전자가 마주 서 있었다. 사고 경위를 따지던 사이 뒤따르던 8.5t 화물차가 그대로 덮쳤고 두 사람은 현장에서 숨졌다. 강원경찰청이 밝힌 이 사고는 고속도로 2차사고가 반복되는 가장 흔한 형태다.

한국도로공사 집계를 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784명 가운데 138명, 약 18%가 1차 사고 뒤 이어진 2차사고로 숨졌다. 2차사고 치사율은 일반 교통사고의 5~7배, 통상 6배 수준으로 분석된다. 접촉사고 자체보다 그 뒤에 도로 위에 서 있는 몇 분이 더 위험하다는 뜻이다.

◆ 명절 연휴 고속도로 사상자, 4년 새 두 배로

한국도로공사가 지난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명절 연휴 고속도로 교통사고는 167건, 사상자는 115명이었다. 연도별로는 2020년 23명이던 사상자가 2024년 47명으로 104% 늘었다. 2024년에는 사망 2명, 부상 45명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뚜렷하다. 같은 자료에서 명절 연휴 사고 167건 중 96건(57.8%)이 전방 주시태만이었다. 과속(18건)의 5배가 넘는다. 정체와 피로가 겹친 도로에서 앞차를 보지 못한 추돌이 명절 사고의 본류라는 얘기다.

명절 사고는 인명 피해 규모도 크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분석에서 추석 연휴 교통사고 치사율은 100건당 1.6명으로 평소보다 23% 높았다. 도로교통공단이 내놓은 빅데이터 분석에서는 추석 연휴 사고 100건당 사상자가 172.4명으로 평소보다 16.8% 많았다. 가족 단위 탑승이 늘어 한 번의 사고가 여러 명의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경부선 사고 24건… 귀성 간선이 위험 구간

노선별로는 대구·경북을 관통하는 귀성 간선 도로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서 경부선은 명절 연휴 사고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부선 등 주요 간선도 상위 노선에 포함됐다. 서울에서 대구·부산으로 향하는 차량이 몰리는 구간일수록 정체와 추돌, 그리고 2차사고 위험이 함께 커진다.

전형적인 2차사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벼운 접촉 뒤 두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과실을 따지고, 뒤따르던 대형 차량 운전자가 정차 차량을 미처 보지 못한 채 들이받는다.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7월 사망사고 현장에 대해 "운전자 두 분이 내려와 계셨던 것 같아요. 대형 차량 운전자는 전방에 사고 차량이라든가 이런 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멈춰 선 차량을 수습하던 중 25t 탱크로리가 추돌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고도 있었다. 터널과 곡선 구간은 후행 차량의 시야가 짧아 정차 자체가 치명적이다.

◆ '비트밖스'… 비상등 켜고 트렁크 열고 가드레일 밖으로

한국도로공사는 사고 직후 행동요령으로 '비트밖스'를 권한다.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열어 후행 차량에 위치를 알리고, 가드레일 밖으로 대피한 뒤, 신고하라는 순서다. 차 안이나 갓길에 머무는 것은 대피가 아니다.

차량을 옮길 수 있으면 옮기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사고 차량을 인근 휴게소 등 안전지대까지 무료로 견인하는 긴급견인서비스를 운영하며, 연락처는 1588-2504다. 사고 직후 접근하는 사설 견인차에 대해서는 무단 견인과 과다 요금 청구 피해에 유의하라는 소비자 주의가 반복돼 왔다.

◆ 현장 보존 대신 '사진 4장', 다툼은 분심위로

운전자들이 도로 위에 머무는 진짜 이유는 과실비율이다. 손해보험협회는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차를 옮기면 불리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이 대피를 막는다고 지적한다. 협회가 제시하는 대안은 사진 4장이다. 파손 부위 근접 사진, 차량 위치가 보이는 원거리 전경, 바퀴 각도,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한 뒤 곧바로 이동하라는 것이다.

과실 분쟁은 갓길이 아니라 제도에서 다투면 된다. 손해보험협회가 심의 결정 1만8천여건을 분석한 결과 과실비율 분쟁 심의를 청구한 운전자의 82.8%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도로 위에서 결론이 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동차사고 과실비율분쟁심의위원회는 2024년 1월 보험업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갖춘 법정기구가 됐다. 보험연구원 자료를 보면 분심위 결정에 따른 당사자 간 합의 종결 비율은 2023년 기준 90%, 평균 처리기간은 66.9일로 법원 민사소액 1심(135.4일)의 절반 수준이다. 결정에 불복해 소송으로 간 사건의 89%는 법원이 분심위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다.

◆ 분쟁 10년 새 5배… 포털은 챗봇까지 달았다

분쟁 자체는 급증했다. 보험연구원 분석에서 과실비율 분쟁 심의 건수는 2014년 3만건대에서 15만6천812건으로 5.2배 늘었다. 대물배상 수리 건수 대비 분쟁 비율도 1%에서 5.4%로 올랐다.

원인 중 하나는 기준에 대한 무지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에게 대표적인 사고 유형 10개의 기본과실을 물었더니 평균 정답은 2개, 정답률 20%에 그쳤다. 손해보험협회는 지난달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정보포털을 일상어 검색과 챗봇을 갖춘 모바일 중심 구조로 전면 개편했다. 협회는 개편 목적을 소비자의 과실비율 이해를 높여 사고 처리를 원만하게 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다만 포털이 알려주는 인정기준은 참고용 가이드다. 손해보험협회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소송에서는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한다. 6대 4로 통보받은 과실비율이 분심위 심의를 거쳐 100대 0 무과실로 바뀐 사례도 있는 만큼, 현장 다툼보다 절차가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