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민지] 용광로가 식으면 청년도 떠난다

입력 2026-09-14 16:30:00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박민지 로컬콘텐츠 스튜디오 파동 대표

박민지 로컬콘텐츠 스튜디오 파동 대표
박민지 로컬콘텐츠 스튜디오 파동 대표

용광로의 도시 포항을 뜨겁게 달궜던 온기가 식어가며 사람들의 마음마저 차갑게 가라앉히고 있다. 포스코가 창사 58년 만에 첫 파업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업은 11일 오전 끝났지만, 이것으로 모든 갈등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죽도시장 한복 골목에서 로컬 편집숍을 운영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포스코에서 일하지 않지만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회사'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미 또래 친구 대다수가 포항을 떠났다. 포스코 말고는 일할 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설적이게도 이 도시에는 '그래도 포스코는 남아 있다'는 믿음이 오랜 세월 깔려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죽도시장으로 출근할 때마다 피부로 와닿는 서늘함이 있다. 불황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매출로, 손님 수로 느껴진다. 주변 상인들의 깊어지는 한숨은 상경하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에게 남의 일이 아닌, 어느 순간 나의 한숨이 된다.

​그래서 지금 포스코 노사 갈등을 지켜보는 마음은 더 절박하다. 뉴스 한 줄에 도시 전체가 술렁인다. 노사 갈등은 어느새 한 기업과 노조 사이의 문제를 넘어 포항 전체를 흔드는 불안이 됐다. 두 주체만의 문제였다면 온 도시가 이토록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스코의 갈등은 이미 이 도시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노동조합에 무조건 양보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노조의 입장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동시에 회사가 처한 현실 역시 모른 척할 수 없다.

​다만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2차 파업 소식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이 싸움이 누구 하나 이기지 못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든 버텨온 포스코마저 더 휘청인다면 '그래도 포스코는 있다'는 믿음마저 얇아질 것이다. 청년들이 이 도시에 남을 이유 역시 하나씩 사라진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상처 입는 것은 노사 양측만이 아니다. 명절 대목을 앞둔 죽도시장 상인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버텨보려는 청년들의 마음도 함께 얼어붙는다.

​포스코에도 전하고 싶다. 회사는 오랜 세월 지역사회가 보내준 묵묵한 신뢰 위에서 성장했다. 재무제표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회사를 지탱해 온 가장 튼튼한 뿌리였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걸림돌로만 여긴다면 그 뿌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뿌리가 흔들리면 고향에 남기로 한 청년들의 결심 역시 함께 흔들린다.

​쇳물을 녹이는 뜨거운 용광로는 식더라도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이 도시를 등지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그 마음을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순진하거나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죽도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상경 대신 포항에 남기로 한 청년으로서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포항이 청년에게 떠나야 할 이유를 보태는 도시가 아니라, 남아도 괜찮은 도시였으면 한다.

​용광로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이 도시에 남기로 한 청년들의 마음까지 함께 식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포항이 그저 수확 가득한 가을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