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경제]카트 가득? 옛말이죠…요즘 장바구니는 '조각조각'

입력 2026-09-12 06:30:00 수정 2026-09-13 13: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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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마트 장바구니 카트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마트 장바구니 카트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김모(35) 씨에게 '장을 본다'는 말은 한 곳에서 카트를 가득 채운다는 뜻이 아니다. 생필품은 온라인 특가를 이용하고, 고기는 대형마트 할인 때 산다. 과일과 채소는 값이 싼 반월당역 지하상가를 찾고, 당장 필요한 식재료는 퇴근길 편의점에서 조금씩 산다. 한때 대형마트 카트 하나에 담겼던 장바구니가 여러 곳으로 쪼개지고 있는 셈이다.

쪼개지는 건 장보는 장소만이 아니다. 한 번에 사는 양도, 한 끼의 크기도 작아지고 있다. 대용량 대신 필요한 만큼만 담긴 소포장 식재료를 사고, 간편식도 한 끼에 먹을 만큼만 고른다. 가격대가 높은 화장품이나 향수는 본품을 덜컥 사기보다 작은 용량으로 먼저 써본 뒤 구매를 결정한다. 고물가 속 '한 번에 많이 사야 이득'이라는 공식 대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사는 소비가 유통가의 새로운 풍경이 되고 있다.

◆마트 한 번에 끝?…여러 곳으로 쪼개진 장바구니

김 씨에게는 품목별로 정해진 장보기 장소가 따로 없다. 같은 상품이라도 그날 어디가 더 싼지, 어떤 할인 행사가 붙었는지를 보고 구매처를 바꾼다. 생수와 휴지는 온라인 가격을 비교해 특가가 뜨면 주문하고, 당장 필요한 식재료는 새벽배송을 이용한다.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상품이나 1+1·2+1 행사가 더 유리하면 퇴근길 편의점을 찾는다.

대구 반월당역 지하상가의 한 채소가게에서 농산물이 낱개 또는 소량 단위로 판매되고 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사는 소비가 늘면서 소량 장보기를 할 수 있는 판매처도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대구 반월당역 지하상가의 한 채소가게에서 농산물이 낱개 또는 소량 단위로 판매되고 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사는 소비가 늘면서 소량 장보기를 할 수 있는 판매처도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고기도 한 곳에서만 사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 카드 할인이나 반값 행사를 하면 마트를 찾고, 동네 정육점에서 보내오는 할인 문자에 싼 품목이 있으면 정육점에서 산다. 과일과 채소는 가격이 저렴한 반월당역 지하상가를 이용한다. 타임세일 때 바나나 한 묶음이 1천원에 나오고, 대형마트에서 여러 개씩 묶어 파는 배도 이곳에서는 한 개에 1천원에 살 수 있어서다. '어디에서 장을 볼까'보다 품목마다 '오늘 어디에서 사야 가장 쌀까'를 따지는 셈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장바구니가 여러 곳으로 나뉘면서 유통업계도 장보기 수요를 잡기 위한 채널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편의점은 '급할 때 한두 개 사는 곳'을 넘어 신선식품과 식재료를 갖춘 장보기 채널로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CU는 이달 처음으로 삼겹살과 한우 불고기, 계란, 사과, 두부, 콩나물 등 90여종의 장보기 상품을 담은 종이 전단을 매장에 비치했다. 현재 300개인 '장보기 특화점'도 연말까지 500개로 늘릴 계획이다. GS25 역시 신선식품 강화형 매장을 연내 1천100개까지 확대한다.

실제 올해 상반기 편의점 4사의 신선식품 매출은 모두 두 자릿수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GS25는 46.4%, 세븐일레븐은 22%, CU는 21.7%, 이마트24는 15% 늘었다.

CU가 이달부터 전국 점포에 비치하는 장보기 행사 전단. BGF리테일 제공
CU가 이달부터 전국 점포에 비치하는 장보기 행사 전단. BGF리테일 제공

◆쌀도 고기도 김밥도 '미니'…한 끼만큼만 산다

장을 여러 곳에서 나눠 보는 것과 함께 한 번에 사는 양도 작아지고 있다. 채소와 과일 같은 식재료부터 쌀과 고기, 한 끼를 해결하는 간편식까지 '먹을 만큼만' 담은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GS25의 올해 1~4월 200g 이하 소용량·소포장 신선식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3% 증가했다. CU에서도 채소와 과일 등 소포장 상품 매출이 같은 기간 26.2% 늘었다.

대형마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롯데마트의 1㎏ 소포장 쌀 매출은 89%, 400g 안팎의 '간편 한끼 축산' 매출은 30.1% 증가했다. 이마트에서는 손질해 소량으로 판매하는 편이채소 매출이 20%, 조각과일 매출이 42% 늘었다.

식재료를 넘어 한 끼의 크기 자체도 작아지고 있다. CU가 올해 1월 선보인 'get모닝 꼬마김밥'은 출시 약 50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넘어섰다. 미니 사이즈 김밥 2종이 전체 get모닝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달에는 2알짜리 유부초밥과 미니 샌드위치 등 미니 간편식 13종도 선보였다.

대용량 상품은 단위 가격만 놓고 보면 여전히 저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과 보관 부담, 먹지 못하고 버리는 양까지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간편식에서는 외식 물가와 칼로리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졌다. '많이 사서 싸게'보다 '먹을 만큼만 사서 남기지 않는 것'을 가성비로 여기는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딥티크(DIPTYQUE)가 선보인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딥티크(DIPTYQUE)가 선보인 '썸머 리미티드 오 드 뚜왈렛 3종 세트. 신세계 제공

◆본품 덜컥 안 산다…작게 써보고 고르는 '테스트 소비'

작게 사는 소비는 먹거리 밖으로도 번지고 있다. 가격대가 높은 향수처럼 취향에 따라 구매 만족도가 크게 갈리는 제품은 큰 용량의 본품을 바로 사기보다 작은 용량으로 여러 제품을 경험한 뒤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는 식이다.

10일 대구신세계백화점 딥티크 매장에서 만난 이유주(37) 씨도 향수를 고르며 작은 용량을 먼저 찾았다. 이씨는 "향수는 직접 뿌렸을 때와 시간이 지난 뒤 향이 또 다르고, 어떤 향이 나한테 잘 맞는지 고민될 때가 많다"며 "작은 용량으로 먼저 써보고 마음에 드는 향이 있으면 나중에 본품을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구신세계 딥티크 매장에서는 7.5㎖ 향수 5개로 구성된 디스커버리 키트를 판매하고 있다. 7.5㎖ 제품을 낱개로 판매하지는 않지만 여러 향을 작은 용량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묶은 상품이다. 한 가지 향을 큰 용량으로 구매하기 전에 여러 향을 충분히 사용해보고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본품 구매 전 작은 용량을 경험하려는 수요를 겨냥한 제품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있다. 엑스니힐로는 올해 국내에서 기존 50·100㎖보다 작은 10㎖ 제품을 별도로 선보였다. 소용량 제품을 출시한 가운데 올해 2~6월 국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어디서든 가격을 따져볼 수 있게 되면서 '많이 사야 더 싸다'는 믿음이 깨진 결과로 본다. 살 곳도 많아지고 비교도 쉬워지다 보니 굳이 대용량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김성숙 계명대 경제금융학과(소비자학 전공) 교수는 "플랫폼별 가격 비교가 일상화되면서 무조건 많이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소포장 구매나 소용량 테스트 소비는 낭비와 실패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들이 체득한 영리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는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질소득 정체가 지출 통제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지갑 사정이 팍팍해지면서 한 번에 목돈을 쓰기보다 지출 단위를 잘게 쪼개는 분할 소비 경향이 짙어졌다"며 "특히 금융소득이나 성과급 등 추가 소득 기회가 적은 지역 소비자일수록 고물가 속 생존 전략으로 이 같은 쪼개기 소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같은 혜택이 정보 검색에 익숙한 젊은 층에 쏠리면서, 기존 오프라인 매장에 의존하는 고령층 등 정보 취약계층과의 소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U 1인용 소용량 회 4종. BGF리테일 제공
CU 1인용 소용량 회 4종. BGF리테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