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한윤조] 랩 다이아몬드의 급부상

입력 2026-09-1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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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 논설위원
한윤조 논설위원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라는 노래 가사처럼 수백만 년 동안 땅속 깊은 곳에서 고온과 고압을 견뎌낸 천연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는 사랑과 부(富)의 절대적 상징으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배양된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일명 랩 다이아)가 실용과 가치를 내세워 시장을 잠식하면서, 영원한 가치를 자랑하던 천연 다이아몬드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랩 다이아는 천연석과 물리적·화학적·광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함에도 가격은 70~90%가량 저렴한 데다, 미관상 육안(肉眼)으로 구분조차 불가능하다. 당연히 소비자가 굳이 비싼 천연석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다. 웨딩 시장에서는 이미 과반의 커플이 랩 다이아 약혼반지를 선택하고 있고, 패션 주얼리와 일상 장신구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 파괴적 혁신은 한 세기 넘게 글로벌 시장에 군림해 온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을 고점 대비 35% 이상 폭락시켰고, 자원 의존도가 높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경제적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재정의 상당 부분을 다이아몬드 수출에 의존해 온 보츠와나는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고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현지 광산들이 잇따라 가동을 멈췄다.

그러나 이 거센 파고의 반대편에서는 뜻밖의 기술 혁명이 피어나고 있다. 보석 시장에서 폭발한 랩 다이아 수요는 화학 기상 증착(CVD) 등 합성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견인(牽引)했고, 이는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 소재로 부상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실용화된 어떤 물질보다 열전도율이 높고 고전압 및 방사선에 강해, AI 데이터센터의 열 관리와 차세대 6G 통신, 우주·국방용 전력 반도체의 '꿈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소비자가 더 크고 화려한 보석을 갈망하던 욕망이 차세대 첨단 산업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열쇠가 된 셈이다.

한국 역시 대기압 상태에서의 다이아몬드 합성 기술과 단결정 웨이퍼 트랜지스터 구현 등 기초 연구에서 성과를 내며 대열에 합류했다. 영원할 것 같던 천연 다이아몬드의 몰락(沒落)은 전통 산업의 종말을 고하는 경고음인 동시에,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새로운 산업 지평을 보여준다.

한윤조 논설위원 hanyunj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