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름을 가칭 '국민참정권위원회'로 바꾸는 개헌 방향을 내놓은 9일, 경찰청에선 공교롭게도 '국민참여·현장동행 경찰개혁단'이 출범했다.
지난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른 선관위와 최근 실종 사건 부실 대응 등 각종 논란이 이어진 경찰이 같은 날 개혁 방안을 내놓으면서, 공통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단어가 발견된다.
'국민'이다. 그리고 參(간여할 참). 선관위는 기관 이름부터 국민의 참정권을 강조하고, 경찰은 국민의 참여가 골자인 국민경청회와 시민배심원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방향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그 '국민'은 과연 누구인가.
◆선관위·경찰 개혁 전면에 등장한 '국민'…대표성은 누가 담보하나
민주당 선관위 개혁TF가 내놓은 개헌 방향에는 이름을 바꾸자는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감사위원회를 두고, 선관위원 임명 과정에 국회 동의 등을 도입하며 감사원 감사 대상에 선관위와 소속 공무원을 포함하는 방안도 담겼다. '국민참정권위원회'라는 새 간판보다 이런 제도 변화를 더 눈여겨봐야 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독립감사위에 참여할 외부 인사다.
경찰개혁단은 11월까지 전국 국민경청회를 열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받은 후, 경찰이 내놓은 대책을 시민이 평가하는 가칭 '경찰정책 시민배심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사회적 약자나 범죄 피해자 등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배심원을 구성키로 했다.
여기서 대표성 문제가 새롭게 발견된다. 외부 인사와 단체 추천 배심원 등에 대해 어느 단체에서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 비판적인 목소리와 우호적인 목소리의 균형은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따라 '국민의 평가'라는 결과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국민은 하나의 생각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도 있고 찬성하는 국민도 있다. 또 조직력과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집단이 참여 절차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경우 전체 국민 여론과는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다.
◆'답정너' 토론회부터 '셀프 추천'까지…'국민 참여'가 남긴 물음표
이런 의문은 앞서 이재명 정부의 다른 '국민 참여' 실험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가 한 사례다. 당시 행사에는 정부 관계자와 학계·연구소 전문가, 시민단체, 공인중개사, 금융업계 관계자, 유튜버와 맘카페 회원 등 모두 140명이 참석했다. 국민 의견수렴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냈던 일반 국민 가운데서는 29명이 초청됐다.
국민의힘은 토론회 개최 전부터 이를 두고 이미 정부가 답을 정해 놓은 '답정너' 토론회,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행사라고 비판했다. 이는 야당의 정치적 주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결국 논란의 핵심은 토론회라는 형식 자체보다 '누구를 참석시키고 누구에게 발언권을 주느냐'였다.
또 다른 사례인 '국민추천제'에서는 참여 제도의 주된 허점이 실제로 나타났다. 이재명 정부는 장·차관과 기관장 등 주요 공직 후보자를 국민에게 추천받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김인호 전 산림청장이 2025년 6월 자신을 산림청장 후보자로 직접 추천한 후 같은 해 8월 실제 임명된 것으로 국정감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본인 추천 자체는 제도상 허용됐으나, '국민이 인재를 발굴한다'는 제도의 취지와 '셀프 추천'이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논란이 됐다. 참고로 김인호 전 청장은 올해 2월 '중대한 현행 법령 위반'(이라고 쓰고 '면허정지 수준 음주운전 신호위반 연쇄추돌 사고'라고 읽는다)으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직권면직 처리됐다. 의도찮게 셀프 추천에 대한 적절한 매듭이 이뤄진 셈일까.
올해 7월 대통령의 2차 부처 업무보고에도 '국민참여단'이 등장했다. 대통령 SNS 등을 통해 1천259명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연령·성별·관심 부처 등을 고려해 200명이 선발됐다. 다양한 사람을 뽑으려는 장치는 있었지만, 전체 국민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것이 아니라 먼저 대통령 SNS 등을 보고 스스로 참가를 신청한 사람 가운데 정부가 선발하는 구조였다. 이 경우 정치와 정부 정책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의 '자기선택 편향' 가능성이 짙게 나타날 수 있다.
◆국민 전체를 닮게 뽑았다…신고리 공론화가 보여준 '참여의 설계'
국민 참여를 정책에 도입했던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는 우선 전국 시민 약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후 시민참여단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 가운데 건설 재개·중단에 대한 기존 의견과 성별·연령 등을 고려해 500명을 무작위로 추출했다. 선정 과정에선 별도의 검증위원회가 입회, 그 과정도 언론에 공개했다. 참여단은 한 달 동안 찬반 양쪽 자료를 학습한 후 숙의 과정에 들어갔다.
그저 많은 국민을 불러 모은 게 아니라 '어떻게 뽑아야 국민 전체를 최대한 닮은 집단을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설계한 것이다.
◆'국민이 함께했다'면 충분한가…참여와 검증은 다른 문제
국민 참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심화 과정에서는 되레 비전문성을 나타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은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권력기관의 잘못을 찾아내고 책임을 묻는 과정까지 대신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역할은 감사기구와 국회, 야당의 견제, 전문가의 검증과 언론의 감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국민 참여가 이들과 함께 작동할 때 개혁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반대로 '국민이 함께했다'는 설명만 남는다면, 참여는 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개혁을 포장하는 수사가 될 수도 있다.
선관위가 '국민참정권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개혁 현장에 국민들이 앉는 것보다 먼저 답을 내놔야 할 질문도 그래서 단순하다.
'누가 그 국민을 골랐고, 그 국민은 정말 국민을 대표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