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300여종 자동차 부품 일군 '대경테크노' 곽현근 대표
51년 지킨 '무체불 원칙'… 현장서 일군 뚝심
위기 속 대출로 지켜낸 '41년 나눔의 약속'
곽 대표 "상공계 화합 위해 마지막 봉사할 것"
1976년 2월, 구미가 '시'로 승격되기도 전인 '구미읍' 시절.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단돈 3천원을 쥐고 구미 땅을 밟았던 한 소년공이 있었다. 51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내연기관 필수 부품 1천300여 종을 생산하는 강소기업 ㈜대경테크노를 일궈낸 수장이자, 41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웃에게 온기를 전해온 구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반세기 동안 생산 현장의 기름때를 묻히며 구미 공단의 영욕을 온몸으로 함께해 온 산증인 곽현근 대표를 만났다.
◆ 51년간 지켜온 '무체불' 원칙과 현장 기술력
곽 대표는 구미 경제의 본질을 '정통 제조업'에서 찾는다. 1976년 구미에 내려와 직물공장, 노가다(막일) 판 등을 전전하던 그는 오성전자 등 현장에서 프레스 작업을 하던 중 안전장치가 미비했던 기계에 오른손 손가락을 심하게 다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구미전자공고)를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자수성가했다.
24년간의 치열한 직장생활을 거쳐 1999년 설립한 ㈜대경테크노는 올해로 27년 차를 맞았다. 현재 구미 공단 내 1만 평 규모의 사업장에서 1천300여 종의 핵심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며 지속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가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고용노동부 '제58회 기능한국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곽 대표가 평생 가장 큰 긍지로 여기는 것은 '정직한 신뢰'다. 곽 대표는 "51년간 제조업 외길을 걸어오면서 거래처 결제 대금이나 종업원 임금을 단 한 번도 체불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외부 인사나 화려한 겉치레 기업인들과 달리, 반세기 동안 현장 노동자·거래처와의 약속을 지켜온 그의 뚝심은 구미 실물 경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독보적인 자산이다.
◆ "돈이 남아 하는 기부가 아닙니다, 생활비를 쪼개온 마음입니다"
곽 대표의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진정성'이다. 1986년 결혼 직후, 살림이 넉넉지 않던 직장인 시절 "우리보다 힘든 아이들을 도우며 살자"고 아내와 약속했던 첫걸음이 41년간 단 한 해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가장 큰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먼 사태)와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였다. 회사의 매출이 급감하고 존립마저 위태롭던 상황에서 주변에서는 기부 중단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곽 대표 부부는 망설임 없이 대출을 실행해 장학금을 마련했다.
"여유가 넘쳐서 하는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장학금 약속은 기업이 어렵다고 멈출 수 없는 생명선이었습니다. 내 생활비를 쪼개고 정성을 담아 지켜내는 것이 진짜 나눔이자 기업인의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의 나눔은 금오공대(8년 후원회장), 구미전자공고, 구미대, 경운대 등 지역 인재 육성으로 이어졌고, 불교 봉사단체 '연꽃마을'을 통한 베트남 라이따이한 구호 활동으로 조용히 뻗어나갔다.
◆ "6년 전 의로운 양보… 바른말 아끼지 않는 지역의 어른"
곽 대표는 지역 기업인 최초로 12만 회원을 거느린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6년간 역임하며 대통령 훈장을 수훈하는 등 굵직한 조직을 이끌어왔다. 지역 정치가 흔들릴 때마다 지자체장이나 정치인 앞에서도 "구미 발전을 위해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며 당당히 쓴소리를 쏟아내는 기개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6년 전 상공회의소 선거 당시, 그는 상공계의 분열과 갈등을 막기 위해 투표 없이 선뜻 물러서는 '의로운 양보'를 택했다. 사리사욕을 앞세우기보다 전체 상공인의 화합과 품격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던 그의 전례는 지금까지도 지역 상공계에 큰 울림으로 회자된다.
곽 대표는 "단돈 3천 원을 쥐고 구미에 내려와 대경테크노를 일구고 나눔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구미 공단과 상공인, 시민들이 베풀어준 과분한 은혜 덕분"이라며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제 인생의 마지막 봉사를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