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유변] 일본의 지역정원제가 한국 의료개혁에 던지는 경고  

입력 2026-09-0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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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지난 주말 열린 대구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일본의 지역정원제에 대한 효고현보험의협회 후지스에 마모루 부의장의 강연이 있었다.

일본은 이미 2008년부터 지역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입학 시 특정 지역 9년 의무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지역정원제를 시행해 왔다. 2014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되어 어느덧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의 성적표를 들고 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 후지스에 부의장의 담백한 경험담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그는 지역정원제의 긍정적 효과로 제일 먼저 젊은 의사들의 지방 배치가 늘어난 점을 꼽았다. 하지만 뒤이어 전 연령 의사 인력으로 본다면 지역 편차는 지역정원제 실시 이전과 동일하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정책적으로 젊은 의사들을 의료 취약 지역에 한시적으로 밀어 넣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한 9년의 의무 근무를 마친 의사들이 과연 그 지역에 계속 남아있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계약을 어길 경우 수억 원대의 위약금과 장학금 반환, 수련 제한이라는 강력한 제재가 가해져 9년 동안은 지역에서 근무하더라도, 의무 기간만 채우면 대도시로 이탈하는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더 큰 문제는 의사 개인의 역량 저하와 지역정원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무너져가고 있는 필수의료에 있었다.

지역정원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한 학생들은 9년이라는 긴 의무 근무 동안 다양한 임상 케이스를 접하기 어렵고, 세부 전공을 연수할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워내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다양하고 풍부한 임상 케이스를 접해 실력 향상에 매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의료 취약지에 의무적으로 근무함으로써 의사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손실인 동시에 국가적인 의료 역량의 손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역정원제를 시행했음에도 외과와 같은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는 전혀 늘어나지 않고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으며, 이러한 점은 앞으로 일본 정부가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정책을 개발함으로써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지역정원제는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단지 의료 취약지에 젊은 인력을 한시적으로 묶어두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강연을 들으며 한편으로 일본이 부러웠던 부분은 일본 정부와 국민, 그리고 의사의 관계였다.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료를 공공서비스로 인식하지만,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르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사의 발언권이 높고 의사의 의견은 언제나 정부와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다고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여전히 의사의 조언과 현장의 목소리가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은 그저 명분을 부여하기 위한 들러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12년간 일본의 경험을 통해 지역정원제가 지역의료 균형발전과 필수의료 정착에 실패했고, 오히려 젊은 의학도들의 전문성 형성을 저해한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패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정부는 한창 실력을 갈고닦아야 할 젊은 의사 인력을 의료 취약 지역에 묶어두는 무분별한 정책을 거두어야 한다. 대신 현장에서 필수의료를 지키는 의사들에게 현실적인 수가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소신 진료를 가로막는 형사 처벌과 사법 리스크를 경감해 주는 근본적인 환경 개선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후지스에 부의장이 지역의사제를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에게 꼭 해주고 싶다며 전해준 조언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 "지역의사제가 꼭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