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본은 있다,일본은 없다
김재철 지음/ 열아홉 펴냄
비가 그친 뒤에도 일본의 누군가는 빗자루를 든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젖은 골목을 다시 쓸고 가게 앞을 정돈한다.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조용히 줄을 서고, 작은 빵집과 생선가게에서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MBC 도쿄특파원 출신으로 사장까지 지낸 김재철 작가가 일본을 바라보다 붙잡은 장면들이다. 일본은 그에게 한 번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1983년 첫 일본 취재를 시작으로 도쿄특파원으로 3년 4개월을 지냈고, 이후에도 200회 넘게 일본을 오갔다. 그 오랜 시간을 통과해 나온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바로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이다.
책은 제목에 대한 답을 단정적으로 내리지 않는다. 대신 일본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낯설어지고, 멀게 느껴지는 순간 또 가까워지는 그 경계를 오래 들여다본다. 저자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을 무조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일본을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그 시선이 처음 향하는 곳은 '느린 힘'이다. 저자는 홋카이도 반에이 경마장에서 무거운 썰매를 끌며 모래언덕을 오르는 말들을 바라본다. 한 번에 빠르게 달려 정상에 오르는 경주가 아니다.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고, 한 걸음씩 힘을 보태 결국 목적지에 닿는다. 그는 이 장면에서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발견한다. 빠르게 앞서나가기보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오랜 시간 버티며 끝내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도 그런 시선에서 다시 바라본다.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성장의 속도가 멈춘 뒤에도 일본의 일상은 놀라울 만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화려했던 경제성장은 사라졌지만 오래 이어져 온 질서와 생활의 방식은 남았다. 저자가 일본에서 발견한 것은 성장률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의 힘이다.
그렇다고 일본을 미화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한국인이 일본을 보며 느끼는 불편한 지점을 피하지 않는다. 왜 일본인은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가. 왜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인식은 이렇게 다른가. 왜 일본에서는 형식과 질서가 중시되는가.
책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동시에 두 사회가 얼마나 깊게 얽혀 있는지를 짚는다. 불교와 한자가 가야, 백제, 신라를 통해 전해졌다. 철기와 도자기도 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갔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그곳에 기술의 흔적을 남겼다. 두 나라의 역사는 교류와 갈등, 수용과 저항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이어져 왔다.
그래서 저자가 바라보는 현해탄은 단순한 국경선이 아니다. 싸움의 경계였지만 동시에 사람과 물건, 기술과 문화가 오가던 길이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현해탄을 바라보며 묻는다. 왜 두 나라는 잊을 만하면 서로를 미워해야 했을까.
오늘날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한국인 수백만 명이 매년 일본을 찾고, 일본에서도 한국 문화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었다. 정치와 외교의 언어가 갈등을 이야기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미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고,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듣고, 문화를 소비한다. BTS와 K팝, 트로트와 엔카를 비교하고, 오마카세와 골목의 작은 가게를 들여다보며 서로의 일상을 경험한다.
저자가 일본에서 발견한 것은 결국 '일본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쿠라와 하나비를 바라보며 순간의 아름다움을 붙잡으려는 마음,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잠시 멈추는 시간, 비가 그친 뒤 다시 길을 쓸어내는 사람의 손길에는 국경으로 나눌 수 없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280쪽, 1만9천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