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비움으로 채우는 시간, '대구다움'

입력 2026-08-24 12: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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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1960년대 매연으로 뒤덮였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 출처= Fortepan / 41974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1960년대 매연으로 뒤덮였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 출처= Fortepan / 41974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템스강 건너편에서 본 세인트 폴(위),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넌 후 만나는 세인트 폴(아래). 필자 촬영, 2008년
템스강 건너편에서 본 세인트 폴(위),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넌 후 만나는 세인트 폴(아래). 필자 촬영, 2008년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저희 집은 청소가 인테리어예요." 지인의 한마디 말이 아름다움이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본래 바탕을 드러내는 일임을 새삼 일깨운다.

1960년대 초 앙드레 말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주도한 파리의 외벽 청소 프로젝트도 이 미학에 닿아 있다. 산업혁명 이후 매연과 먼지로 검게 뒤덮였던 루브르 박물관과 노틀담 성당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자, 눈부신 황금빛 석회암 본연의 빛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예술가의 안목이 행정으로 발휘되어 인위적 장식 없이 오직 '비워내는 청소'만으로 도시의 정체성과 영혼을 복원해 낸 새로운 풍경이었다.

이러한 비움의 미학은 런던의 스카이라인에서도 빛을 발한다. 런던은 1930년대부터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을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도록, 성당으로 향하는 시선의 통로에 고층 빌딩 진입을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세인트 폴 하이츠(St Paul's Heights)'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자본의 개발 욕망 앞에 행정이 멈춤을 선언하고 하늘의 여백을 계획적으로 사수한 문화적 결단이었다. 마치 수묵화의 여백처럼 무엇을 새로 채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도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켜낸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도시의 고유 가치를 통찰하는 안목에서 비롯된다. 현대 도시에서 보존과 개발은 늘 충돌하지만, 단기 성과에 급급해 오래된 도심의 맥락을 단칼에 지워버리는 조급함은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도시의 비움은 방치가 아니라 자본의 조급함을 제어하기 위해 행정력이 온 힘을 다해 지탱해야 하는 정교한 인내이자 계산된 여백이어야 한다. 그 지혜로운 멈춤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이 서서히 채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안목의 실마리를 필자는 최근 근대 건축물 '무영당' 전시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박제된 과거가 아닌, 켜켜이 쌓인 오랜 시간 위에 피어날 지역 문화의 가능성이었다. 골목을 지켜온 근대 거점들을 섬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과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숨결이 번지도록 조화롭게 연결하는 창의적 재구성이 절실하다. 행정의 역할은 개발 유예를 넘어, 시간의 흔적들을 발굴하고 공공재로 매입해 공간의 여백을 계획적으로 확보해 시간의 인프라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대구라는 거대한 화폭을 마주하고, 도시 정체성을 이끌어갈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지속해서 묻고 그려야 한다. 본바탕을 회복해야 할 공간은 어디인가. 또 마천루의 유혹 앞에 멈춰 서서 '하늘의 여백'을 사수해야 할 조망의 통로는 어디인가. 그것은 흩어진 시간과 주민들의 일상을 동시대 문화의 장으로 연결해, 시간의 결이 풍부하게 살아 숨 쉬는 대구만의 미래를 설계하는 장기적인 축적이며 구체적 계획이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시간 속에서 소리 없이 깊게 익어가는 도시, '대구다움'을 다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