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이호준] 유승민의 숙제

입력 2026-08-1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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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유승민 전 국회의원은 2004년 비례대표로 처음 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내리 4선 의원을 지냈다. 보수 정당의 원내대표와 신당(新黨)의 당 대표를 역임했고, 여러 차례 대권 후보로 나서는 등 보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이보다 빠르다. 한나라당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회창 전 총재의 '경제 교사'로 정계에 입문했고,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3년이나 재임했다. 비례 시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을 맡아 인지도를 높였다.

이미지도 괜찮았다. 똑똑하고 합리적이며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평판(評判)을 쌓았다. 정치색은 중도보수. 대체로 한길을 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정치 인생 최대 고비를 맞았다. 그 늪은 깊고 길었고,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약점도 있다. 융통성이 떨어지고 이렇다 할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 개인으로선 강하지만 무리(黨)를 만들고 이끌고 융합하는 데는 약했다. 정당(政黨)의 '당'은 '뜻을 같이하는 무리'를 의미한다. 정당정치 리더로서 무리가 적다는 건 분명한 한계로 작용했다.

뿌리 인식도 아쉽다.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왔고, 대구에서 국회의원을 네 번 했다. 지역 최대 현안인 신공항 사업도 사실상 유 전 의원이 시작점이다. K2와 대구공항이 있는 동구가 지역구다 보니 항공기 소음에 관심이 컸다. '기부 대 양여' 방식의 군공항이전특별법을 주도했다.

그런데 그는 이 뿌리를 의식적으로 거부한다는 인상을 준다. 보수가 성공하려면 대구경북(TK)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그의 표현인 '중수청'이라는 말이 이를 잘 드러낸다. '중도층·수도권·청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대구경북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시장이 아닌 경기도지사에 나섰다. 2022년 출마 기자회견 때 "대구시장 출마 권유 받은 게 20년 넘은 거 같다. 대구에서 4선 의원을 했지만 한 번도 대구시장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수 정당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영남에 고립·매몰돼선 안 된다"고 했다.

최근 유 전 의원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예전에 비해 보폭(步幅)도 커졌다. 계파·노선·당 가리지 않고, 지역과 관련된 이슈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남 반도체 팹 투자와 광주 군 공항 이전 관련해서도 한마디했다. '지역감정' '소용돌이'까지 언급하는 등 강도도 상당했다.

풀어야 할 숙제는 분명하다. 낙인과 고향이다.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날 때가 됐다. 사과를 하든 오해를 풀든 꼬여 있는 매듭을 직접 풀어야 한다. 그리고 고향을 끌어안든, 고향에 끌어안기든 해야 한다. 소신과 성격이 어떻든 고향에 읍소(泣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보수는 찢어지고 사분오열(四分五裂)돼 있다. 구심점도 안 보인다. 그래서 유 전 의원에겐 보수 대통합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가 꾸고 있는 꿈이 무엇인진 모르겠다. 국민의힘 당 대표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권도 또 도전할 것 같다.

그는 2022년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때 말했다. "평생을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옳은 길이라면 어떤 고난과 가시밭길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해 왔다"고. 낙인·고향 숙제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승부해 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