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김성열] 졸업, 독립이 시작되는 날

입력 2026-10-02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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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지난 6월 막내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장장 5시간이 걸린 행사였다. 강당은 졸업생 가족들로 가득 찼고,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지역신문은 졸업생 명단과 가족의 사진과 소감을 실었다. 온 동네가 졸업식을 함께 지켜본 하루였다. 정규과정 하나를 마치고 다음으로 옮겨가는 정도였던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과는 사뭇 달랐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졸업의 무게는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에 가깝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법적 성년은 19세라 졸업과 동시에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족과 지역사회는 이 무렵을, 부모의 보호 아래 있던 아이가 선택과 책임을 시작하는 사회적 경계로 본다. 제도에서도 보인다. 자녀양육보조금이 이 무렵 멈추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향하던 국가의 시선이 당사자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졸업 후 곧바로 일하면 일반 근로자와 같은 최저시급을 받는다. BC주 최저시급은 시간당 18.25달러다. 밴쿠버 생활비로는 넉넉하지 않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며 생활방식을 조정하면 독립을 시도할 출발선은 된다.

직업교육이나 대학에서는 정부의 학자금 대출이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당장 벌 수 있는 소득을 포기하고 빚까지 감수해 미래에 투자하는 선택이다. 공부는 부모가 정한 다음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 된다.

최저임금제와 학자금 대출은 서로 다른 제도지만, 국가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일 때는 가정을 돕고, 이후에는 독립된 삶을 시작하도록 뒷받침한다.

캐나다에서도 높은 집값과 생활비 때문에 독립을 미루거나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내가 말하는 독립은 열여덟 살이면 집을 나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신의 진로와 노동, 소득과 책임을 선택하고 감당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데서 시작된다.

독립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최저시급과 일자리, 교육과 주거, 사회보장이 맞물려야 한다. 보호의 종료만 정하고 스스로 살아갈 기초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독립이 아니라 방치다. 졸업생 한 사람도 중요한 사회 구성원으로 봐야 정책도 그를 위한 것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법적 성년과 최저임금, 청년지원제도가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사회가 어떤 말을 건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캐나다에서 졸업생은 일을 시작하거나 직업교육 또는 대학을 선택한다. 우열이 아니라 각자 택한 길의 차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보다 "어느 대학에 갔는가", 혹은 "대학에 가지 못했는가"부터 묻는다. 대학이라는 특정 자격을 갖춰야 인정받는 미완성의 존재로 보는 것이다. 대학 뒤에는 취업이, 그 뒤에는 결혼과 집 마련이 기다린다. 성인됨은 계속 미뤄지고 자신을 끊임없이 상대적 가치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청년들의 의지 부족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만으로 첫발을 떼기 어려운 구조에서는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회가 맡아야 할 생애 전환기의 부담을 가정이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결과라는 사실을 국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막내의 이름이 불리고 가족과 이웃의 박수가 이어졌던 날, 학교와 지역사회는 그 아이를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 맞아줬다. 내가 충분히 해주지 못한 부분을 사회가 함께 맡아주는 듯해 고마웠다.

국가는 국민을 정확히 봐야 한다. 미성년자는 보호와 양육의 시선으로 보고, 성인이 되어가는 이에게는 자신의 노동과 선택으로 살아갈 기본 조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보호를 거두는 것만이 성인 대우는 아니다. 혼자 설 수 있는 바닥을 만드는 것까지가 국가의 역할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가 한 사람의 이름을 새롭게 불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되 혼자 버티게 두지는 않겠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