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말썽꾼, 총장·국회의원까지
이동 이론 "젊을수록 자주 옮겨다녀라, 모험 즐겨라"
현 정권에 "국민들 못 살게 하는 낭만적 정치는 나쁜 짓"
"내 일생은 모험 그 자체… 시대 변화에 발맞춰야"
한 시대를 풍미하며 깊은 발자취를 남긴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이 올해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고 활기찬 근황을 전했다.
지난달 30일 매일신문사에서 만난 박 전 총장은 지난 2010년 뇌경색으로 약물 치료를 받은 것 외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트레이드마크인 옆집 아저씨같은 편안한 미소 역시 여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내 일생은 모험 그 자체였다"며 "시대의 변화와 함께 늘 움직이고 생각하라"고 후학들과 젊은 세대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말썽꾸러기로 경북대 지리학과 졸업 후 네덜란드 사회과학원(ISS) 석사, 미국 하와이대 박사 과정을 거쳐 모교 교수가 되었다. 또 직선제로 제13,14대 경북대 총장이 되었으며, 국회의원도 했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로맨티스트이자 휴머니스트인 박 전 총장은 대뜸 요즘 본인 나이 때의 '굿모닝'(Good Morning) 인사에 대한 속뜻을 설명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부부 간에 '굿모닝' 인사를 했는데, 한쪽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란다. 통계적으로 가장 사망자가 많다는 85~90세 구간에 살고 있어, 더 그렇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그야말로 '웃픈' 농담이었다.
◆인생 3막 '탁구', '강의', '출판'
학계와 정계를 거쳐 인생 1막과 2막을 화려하게 마감한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의 '인생 3막'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열정으로 가득하다. 우선 그는 건강 관리를 위해 자전거 대신 탁구채를 잡았다. 뇌경색을 겪은 이후 시작한 탁구는 어느덧 16년째 이어져 온 그의 소중한 일상이자 건강 비결이다.
지식 나눔을 향한 열정도 식지 않았다. 대구시교육청 뒤편 '지식과 세상' 협동조합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세계지리산책 강의를 하고 있다. 무려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순수 무료 재능기부 봉사다. 매년 꾸준히 책을 출판하는 일은 또 다른 중요한 임무이자 즐거움이다.
2023년 ▷러시아와 그 이웃나라, 지난2025년 ▷지리를 알면 다시 보이는 지중해 25개국(베스트 셀러), 2026년 ▷아는 척하기 딱 좋은 아프리카 지식 여행을 출판했다. 최근 인세로 500만원을 받았다며 뿌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벌써 내년을 목표로 라틴아메리카를 주제로 한 신간 집필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박 전 총장은 지금의 삶에 온전히 만족하며 살아온 인생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두 살 터울의 아내 이명자 씨는 여전히 건강을 뽐내며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잘 차려주는 든든한 동반자다. 1남 4녀의 자녀들도 훌륭하게 자라 각자의 자리에서 제몫을 다하고 있다.
비록 다소 장애가 있어 아직 부모 곁을 지키는 큰딸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미국에서 유학한 뒤 삼성전자를 거쳐 현재 대구테크노파크에서 일하는 아들의 소식도 전하며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주 옮겨다녀라, Mobility Theory"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은 샤뮤엘 헌팅턴의 말을 인용해, 젊은 세대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그가 강조하는 핵심 철학은 바로 '이동성(Mobility Theory)', 즉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직장도, 이사도 자주 하는 사람이 결국 잘 살게 된다"며 "기업에서도 이직 경력이 많은 사람이 더 높은 연봉을 받듯,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파란만장한 본인의 일생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일제시대 때 부친이 돈을 벌기 위해 큐슈지역의 조세이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던 1940년에 박 전 총장이 태어났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그는 부모의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돌아왔다. 진주농고를 졸업한 후 경북대 지리학과에 입학했으며, 유럽에서 석사, 미국에서 박사를 한 후 모교의 지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국립대 총장에 2번이나 당선됐으며, 여의도에도 입성했다.
학계와 정계를 두루 거친 그가 평생을 바쳐온 학문은 다름 아닌 지리학이다.그는 지리학을 가리켜 '제왕의 학문'이라고 지칭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분야라는 뜻이다. 박 전 총장은 "지리란 단순히 땅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치이며, 각 지역이 가진 특수성을 아는 것"이라며 "전 세계를 다녀보면 그 지역의 풍수지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전공 때부터 한 갑자(60년) 동안 공부했는데, 이제서야 지리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깊게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여야 초월,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
평생을 실용적 사고로 살아온 박 전 총장은 자신의 정치적 롤모델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던 그는 오직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일념 하나로 의정활동에 임했다. 그의 모든 생각과 철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애국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크게 칭송하는 한편,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을 높게 평가했다. 박 전 총장은 "정치에 좌우가 어디 있느냐. 지금 현재 아웅다웅하는 여야의 정치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며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좀 더 큰 틀에서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구·경북(TK) 지역의 미래와 균형 발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다소 다소 놀라운 관점의 접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지방이 죽었기 때문에 수도권이 살 수 있었다"며 "이제는 TK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부울경까지 아우르는 1,300만 영남권 통합을 이루어 거대 수도권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지역 현안에 대해서는 실속을 챙기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는 가덕도에 양보하는 대신, 대구에서 단 40분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공항 전용 고속철도를 건설하자는 구상이다. 또, TK 지역은 의료·교육·문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알짜배기 도시 콘텐츠를 살찌워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진보 정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재명 정권도 실용적인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려 노력하겠지만, 자칫 현실을 도외시한 낭만적인 정치에 매몰되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가장 나쁜 정치"라며 거듭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롤모델, 북유럽·서유럽 국가
"빈부격차가 줄이고, 모든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찬석 전 총장은 '세계지리산책' 시리즈를 펴낸 지리학자로서 일생동안 전 세계 5대양 6대주를 탐방하고, 100여개 국가를 둘러봤다. 그는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롤모델 국가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서유럽과 북유럽 선진국가를 꼽았다. 보편적인 복지를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박 전 총장은 강소국을 주창한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환경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데다 북쪽으로는 적대국가인 북한에 막혀있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자강(自强)' 만이 살 길이라는 것. 그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요즘 갈 길을 잃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며 "국민의 뜻을 한 곳에 모아, 세계가 부러워할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재의 경제성'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전 세계의 독재자들도 국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하다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를 못살게 만든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UN에서는 국가를 개인의 인격과 동일시한다"며 "국가 안에 지역과 지방이 있고, 장소마다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국가가 왜 그 자리에 있고, 어떠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잘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역사를 모르면 무식하다는 말을 듣지만, 지리를 모르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