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쌤의 리얼스쿨] 선을 아는 아이 키우기

입력 2026-08-0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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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공동체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공동생활의 선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말을 이어 간다. 자기 용무가 먼저이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다. 친구가 발표하는데도 옆 친구와 장난을 치고, 복도에서는 일단 달리고 본다. 다른 친구가 부딪혀서 다칠 수도 있음을 지도하면 "안 다쳤잖아요"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정말 요즘 아이들은 예의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레 공동생활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다 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는 넘으면 안 되는지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과거에는 대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른들과 생활하며 기다리는 법, 양보하는 법 등을 배웠다. 형제자매도 최소한 2명 이상은 됐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외동인 경우도 적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개인 미디어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시하는 게 익숙해졌다.

◆선도 가르쳐야 하는 영역

우리는 중요한 학습 내용을 열심히 가르친다. 독서법도, 운동도, 악기 연주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 혹은 '예의'는 저절로 알 것이라고 기대한다. 어른 세대가 자라왔듯이 '생활 속에서 이 정도는 암묵적으로 알고 자라지 않나'며 넘지 말아야 할 선과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은 간과해버린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어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그 정도'가 가장 어렵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대화를 하고 친구가 지루해하는 것 같으면 나만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라 공동의 주제를 꺼내야 한다는 것, 조퇴를 할 때는 무작정 짐을 싸서 교무실로 오는 게 아니라 선생님께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 상대가 전화 중일 때는 기다렸다가 자기 용무를 말해야 한다는 것. 이는 절대적 틀림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생활에서는 필수적 사회 기술이다. 이런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배우고 학습해야 한다.

선을 지키거나 예의를 갖추는 것은 한 번 혼난다고 생기지 않는다. 부모가 일상에서 보여 주고, 학교에서 반복해서 연습하며, 사회 속에서 경험을 통해 조금씩 몸에 익혀야 한다. 인사를 하는 것, 차례를 기다리는 것,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사과할 때 진심을 다하는 것, 모두가 선을 배우는 과정이다.

한 번에 학습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다음에는 지키겠지'라는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과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나 이번에 국어 시험 완전히 망쳤어"라고 말하는 친구 앞에서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잖아"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 아이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 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은 아니었다.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지도해야 할 사항이 많았지만 나는 '상대를 배려하는 말, 선 넘지 않는 말' 그 한 가지를 목표로 삼아 중점적으로 지도했다.

처음에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하더니 "그런 것도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고 다음번에는 "그 상황에서는 그런 말이 생각이 안 나요"라고 했다. 그 아이는 성격상 바로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를 진심으로 몰랐다. 그래서 나는 말을 내뱉고 혹시나 찝찝하면 "내가 이렇게 말해서 혹시 상처가 됐다면 미안해. 더 따뜻하게 말해 줄 재주가 없어서. 가르쳐 주면 노력해볼게"라고 말하라고 지도했다. 모르니까 가르쳐 달라고 하는 태도를 보고 화가 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황에 딱 맞는 말은 못하더라도, 혹은 실수하더라도 뒤에 노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그까지는 지도할 수 있었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허용하려고 한다. 물론 아이의 자율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율성 때문에 공동생활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란다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특히 학생들은 또래와의 관계가 안정될 때 행복한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돕는 방법이 아니다.

◆진정한 공동체 구성원이 되려면

공동체는 규칙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오래 지속된다. 선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내 행동이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내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한 번 더 생각하는 힘이다.

학교는 공동체를 배우는 첫 번째 사회다. 교실에서 친구를 배려하는 법을 익힌 아이는 가정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욕구만 앞세우는 데 익숙한 아이는 학교를 넘어 사회에 나가서도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선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를 억누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하고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일이다. 공부는 혼자 잘할 수도 있지만,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조운목 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