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흠 극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
좋아하는 작가의 부고는 묘한 감정을 남긴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생긴다.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을 빌려보며 '언젠가는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학생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독서가 게을러졌고, 그는 성실한 작가라 매년 몇 작품의 신작을 내는 터라 읽지 못한 소설이 더 쌓여가던 차였다. 언젠가는 읽겠다고 미뤄 두었던 책들이 이제는 영영 남겨진 작품이 돼버렸다.
누군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도 가가형사 시리즈나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를 읽으며 일본 추리소설에 눈을 떴고, 미야베 미유키나 기시 유스케와 같은 다른 일본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찾아 읽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소설을 처음 본 게 '유성의 인연'이었는지 '붉은 손가락'이었는지는 흐릿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소설을 한 권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을 찾게 됐다는 것. 그는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타고난 소설가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많은 예술가를 작품으로 기억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그림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셰익스피어를 직접 만난 사람은 없지만 그의 희곡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무대에 오른다. 창작자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지만,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그렇지 않을까. 그의 소설은 앞으로도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고, 또 다른 언어로 번역돼 사람들에게 소개될 것이다. 그렇게 처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는 독자에게 그는 세상을 떠난 작가가 아니라 지금 막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현재의 작가로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창작은 참 이상한 일 같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마감에 쫓기고, 퇴고를 반복하며 한 문장을 붙잡고 씨름한다. 그렇게 어렵게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는 어느 순간 창작자의 손을 떠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독자는 자신의 삶을 작품에 덧입히고, 같은 작품도 나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어 낸다. 이야기는 그렇게 창작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된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라는 직업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지만 좋은 이야기는 끝내 누군가의 책장에 남는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른 누군가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작가는 다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아마 나도 그 독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