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입력 2026-08-0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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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와 토마토 쥬스
토마토와 토마토 쥬스

토마토에 설탕을 듬뿍 뿌려서 먹었다. 토마토 맛이 아니라 설탕 맛이었다. 사과처럼 새콤달콤하거나 바나나처럼 달큼한 것도 아닌, 도대체 왜 이런 열매를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토마토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식처럼 매번 식탁에 올리는 것은 아니었다.

시골로 이사 온 후부터 해마다 토마토 모종 대여섯 포기를 심었다. 열매가 익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나눔을 하고도 철철 넘쳐났다. 식탁에는 샐러드, 볶음, 주스, 페스토 등 토마토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1893년 미국에서 토마토를 두고 법정 소송이 벌어졌다. 수입업자들은 과일에 관세가 붙지 않으므로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하였고, 미국 법원은 토마토는 주로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니 채소라는 판결을 내렸다. 토마토를 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수박이나 참외와 딸기 같은 열매(과일) 부류이며, 반면 당분이 적고 요리의 부재료나 식사와 함께 섭취되므로 채소(과채류)로 분류된다는 거였다. 그 정체성이 참으로 모호하다.

토마토 이름의 유래는 아메리카 아스텍 원주민의 '토마틀(Tomatl)'에서 시작되었다. '부풀어 오른 과일', '통통하게 살진 과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토마토를 들여오면서 원주민 발음인 '토마틀'을 스페인어 발음인 '토마테(Tomate)'로 부르기 시작했고,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의 '토마토(Tomato)'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토마토가 들어온 시기는 꽤 오래되었다.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토마토를 '남쪽 오랑캐의 땅에서 건너온 감'이라고 해서 '남만시南蠻柹'라고 불렀으며, 이후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감'이라는 '당시唐柿'로도 기록되어 있다. 토마토는 문헌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유입 자체는 빨랐으나, 감을 닮은 생김새의 관상용 화초로 여겨졌을 뿐 요리 재료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토마토를 식문화의 중심에 둔 국가들은 토마토를 단순한 채소 그 이상으로 본다. 토마토는 감칠맛의 원천으로 파스타 소스, 피자, 각종 스튜와 수프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지중해식 삶의 방식(Lifestyle)'이며 '문화적 정체성'인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 하층민들은 저렴한 채소인 토마토를 빵 위에 얹어 먹기 시작했다. 국왕과 왕비는 나폴리를 방문하면서 서민들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했다. 나폴리의 피자 장인이었던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는 이탈리아 국기의 색깔을 상징하는 재료인 붉은색 토마토, 하얀색 모차렐라 치즈, 초록색 바질을 얹은 피자를 대접했다. 왕비는 이 맛에 매료되었고, 이 피자는 왕비의 이름을 딴 '마르게리타 피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토마토 요리는 단숨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식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토마토의 본초명은 '번가(番茄)'이다. 약선 관점으로 성질은 평(平)하고, 맛은 약간 달며 신맛을 가지고 있어 오장육부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다스리고, 열을 내리며 혈압을 안정시킨다. 토마토의 지용성 항산화 성분인 리코펜(Lycopene)은 기름과 함께 섭취 시 흡수율을 높여준다.

오늘도 토마토는 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어린 날의 설탕 뿌린 토마토가 아니라 화분에서 키운 바질을 넣고 올리브 기름을 듬뿍 뿌린다. 꿀과 약간의 소금을 넣어서 만든 토마토 주스를 마신다.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