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식 칼럼] 대구경북 100년 먹거리, 기초학문 육성과 융합에 달렸다

입력 2026-08-04 06:30:00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최근 경북대학교 G-LAMP 사업단을 이끌며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한 융복합 연구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G-LAMP 사업은 기초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단기 성과 압박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세계적 수준의 융합 연구에 몰입하도록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현장에서 기후 데이터를 분석하고 생태계 변화를 추적하는 기초과학자들의 토론을 듣다 보면, 역설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를 어떻게 높이는지 밝히는 것은 과학의 몫이다. 그러나 수많은 경고에도 인간은 왜 이기적인 소비 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가. 기후 재난은 왜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철학과 역사, 경제학과 사회학의 시선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 기술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반쪽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학문을 향해 "당장 돈이 되는가?", "취업에 유리한가?"를 먼저 묻는다. 정부의 투자 역시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와 같이 성과가 비교적 분명한 미래 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국가 경쟁력 제고와 지역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자다. 그러나 화려한 미래 산업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묵묵히 축적된 기초학문의 튼튼한 뿌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AI 혁명도 수학과 논리학, 컴퓨터과학이 수십 년간 축적한 탐구의 결과다. 반도체산업의 토대에는 물리학과 화학이, 첨단 의료의 뿌리에는 생명현상을 탐구한 기초생명과학이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기술이 지식 노동마저 대신하는 지금,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가?'를 묻는 인문학적 성찰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러한 학문의 결합은 대구경북이 준비하는 미래 산업에서도 필수적이다.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에 심리학과 디자인이 더해져야 인간 친화적인 기술이 완성된다. 유전자 편집과 첨단의료 기술 역시 생명윤리나 사회복지에 대한 고민과 만나야 온전한 혁신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 과학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면,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은 그 기술이 인간을 위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새로운 시대의 융합은 서로 다른 첨단 기술 몇 가지를 단순히 묶는 일이 아니다. 기초학문의 깊이 있는 탐구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학문의 질문과 방법이 만나는 것이 진정한 융합이다. 대학이 학과와 전공의 벽을 낮추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우리는 거점 국립대의 책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장의 단기적 수요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순수과학이나 인문학과 같은 기초학문이 약해진다면, 그 피해는 한 대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의 교사와 대학원생, 연구자를 길러 내는 교육·연구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고,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할 새로운 지식을 준비하는 기반도 함께 약해진다.

거점 국립대는 당장 시장의 수요가 크지 않더라도 국가 경쟁력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학문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국립'이라는 이름에 담긴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다. 기초학문을 과거의 유산으로 보존하자는 뜻이 아니다. 젊은 연구자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기초학문에 대해 긴 호흡으로 탐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학문의 깊이가 첨단 기술과 지역의 문제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대학 정책의 원칙도 명확해야 한다. "기본은 함께 세우고, 탁월함은 경쟁하게 해야 한다." 기초학문 연구와 교육, 젊은 연구자 육성과 같은 대학의 기본 토대는 국가와 지역이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연구자는 각자가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대학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낸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면 된다. 대학의 뿌리까지 경쟁의 결과에 맡기는 것과, 튼튼한 뿌리 위에서 더 높은 성취를 놓고 경쟁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업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내일의 수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의 시간은 조금 달라야 한다. 대학은 10년 뒤, 때로는 100년 뒤에 필요한 질문까지 준비해야 한다. 당장의 쓸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연구에도 시간을 허락할 수 있어야 한다.

대구경북의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면서 기초학문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화려한 가지와 열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를 떠받치는 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초학문을 튼튼히 하고, 서로 다른 학문이 자유롭게 만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대구·경북의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가장 느려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확실한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