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에도 다음 달을 기다리는 이유"…책이 이어준 노년의 다정한 연대

입력 2026-07-30 10: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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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현암사 펴냄

기사 관련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평균 나이 85세. 최고령 92세, 최연소 78세. 이들의 모임에는 특별한 규칙도, 거창한 목표도 없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하지만 그 단순한 반복이 어느새 20년간 이어졌다.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낡은 카페 '시트론'. 매달 첫 번째 금요일이면 여섯 명의 노인이 모인다. 아사쿠라 가스미의 신작 소설 '읽고 읽고 말하다'는 이곳에서 이어져 온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의 20주년을 그린 작품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어떻게 사람을 연결하고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 삶을 이어가게 하는지 따뜻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품 속 독서모임은 이상할 만큼 느리고 때로는 엉뚱하다. 서로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기도 한다. 책에 대한 감상은 어느 순간 먼저 떠난 가족 이야기로, 젊은 날의 선택과 후회로, 오래된 사랑의 기억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뒤죽박죽인 대화 속에서 회원들은 서로의 삶을 조금씩 알아간다. 한 권의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기사 관련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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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에는 스물여덟 살의 야스다가 있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고 카페 점장으로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이 독서모임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느리고 자유분방한 노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임을 지켜보며 그는 깨닫는다. 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확인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야스다는 이 모임 안에서 이야기를 듣는 법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법을 배운다. 타인의 낭독을 통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을 마주하고,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발견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한 회원이 세상을 떠난 아내가 남긴 책을 읽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책장에 꽂힌 책 속 밑줄과 메모는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의 증거가 된다. 책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최고의 동료들과 보내는 최고의 시간이 매달 기다리고 있다"는 작품 속 한 회원의 말처럼 이들에게 다음 모임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이유이자, 누군가와 함께 존재한다는 확인이다.

기사 관련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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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아사쿠라 가스미는 2026년 장편소설 '켄 구와이'로 제175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역대 여성 수상자 가운데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43세에 데뷔한 늦깎이 작가인 그는 수상소감에서 "오래 글을 쓰는 '노년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랜 시간 책과 함께해 온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주목한 것이 바로 노년의 시간이다. '읽고 읽고 말하다' 속 노인들은 쇠약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사랑하고, 질투하고, 후회하며, 새로운 만남과 내일을 기대한다. 작가는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과 관계의 힘을 통해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저자는 실제로 나이가 든 어머니가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가족 안에서는 늘 익숙한 역할을 맡던 어머니가 모임에 가면 전혀 다른 표정으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엄마', '아내'라는 이름 이전에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노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저자의 시선은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지역마다 고령 인구가 늘고 세대 간 단절이 깊어지는 시대에 '읽고 읽고 말하다'는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의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 사는 방법뿐 아니라 오래도록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인지 모른다. 358쪽, 1만8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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