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오희승 지음/ 그래도봄 펴냄
거두절미하고, '숙취, 쉬잔 발라동'을 읽다가 스모키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를 떠올렸다. 몽마르트의 화가들이 열광한 뮤즈 발라동과 그녀의 신산한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화폭에 옮긴 툴루즈 로트레크를 상상하면서, 옆집 앨리스에게 목맨 남자를 24년이나 짝사랑한 끝에 "앨리스는 가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뒤늦게 고백한 섈리도 생각하면서. 저자가 썼듯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선이, 말없이 머물러주는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림과 삶의 통찰이 빛나는 오희승의 에세이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이다.
돌봄과 잔존하는 그리움과 다정한 회복을 기록한 책 전체를 관통하는 건 삶을 거슬러 찾아낸 '예술의 힘'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흔치 않은 작품을 펼치며 다른 길을 간다. 이를테면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넘었고, 사진과 경쟁했으며 벨 에포크를 활보한 화가(그러나 다소 혹은 매우 낯선 이름들)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얘기. 숱한 미술작품 관람기와 차별화를 이루는 지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SNS를 뒤덮은 앤디 워홀과 데미언 허스트와 쿠사마 야요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나를 안심시켰다.
시작은 제시 윌콕스 스미스의 '아침'이다. 이 꼭지에는 우리 삶에 밀착된 소중한 것일수록 만만하게 취급하는 과소평가로부터 촉발된 오희승의 자기성찰이 담겼다. 작가로서 정체성도 불확실하고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이 어색했던, 즉 여성과 모성의 삶을 낮게 평가해온 그녀였지만 "내가 가장 오래, 그리고 깊이 헌신한 삶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19세기 연인들의 작은 눈 초상화에서 끝내 지키고 싶은 사랑의 시간을 포착한 저자는 "우리가 세상에 홀로 있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았음을 보여주는 흔적.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끝내 소중히 지킨다."라고 적고 있다. 당신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걸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인 양 말이다.
처연하기 그지없는 잉거 어빙 코스의 '플루트의 부름'을 책 정중앙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미국 서부 사막에서 만난 원주민을 술회하는 장면, "황량한 사막의 노을 아래, 한 원주민 남자가 붉게 타는 하늘을 등지고 비틀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고, 빛은 낮게 깔려 있었다." 뿌리 뽑힌 삶이 남긴 상처를 살피는 동시에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떠올리는 통찰이라니! 책의 백미라고 여긴 이 꼭지는, 그림은 어떻게 한 사람을 지키고 성장시켜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했는지를 드러내는 마술적 리얼리즘식 대답으로 읽힌다.
대미를 장식하는 건 에두아르 마네의 '철도'와 빅토린 뫼랑이다. '올랭피아'의 모델이었으며, 보여지는 대상에서 응시의 주체로 존재하는 그녀의 당당한 자태에 매료됐을 터. 단단하고 의연한 뫼랑으로부터 살아갈 이유를 찾은 오희승은 새로운 문 하나를 열어준 예술 앞에서 "단단한 눈빛을 가진 여인처럼 나도 이제는 응시하는 주체이고 싶다."라며 책의 마침표를 찍는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그림 읽어주던 목소리에 결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작품에 곡진한 사적 언어로 배접한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치열한 시간을 거쳐 마침내 이른 자리가 안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