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는 섬유를 버린 적이 없다

입력 2026-08-25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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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현 다이텍연구원 사업기획본부 본부장(공학박사)

이도현 다이텍연구원 본부장
이도현 다이텍연구원 본부장

세계는 섬유를 버린 적이 없다. 다만 섬유의 가치를 바꾸고 있다. 의류 중심 산업에서 자동차와 항공우주, 방위산업, 의료·헬스케어를 뒷받침하는 첨단소재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섬유를 전통산업, 사양산업이라는 오래된 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그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가 일본이다. 최근 일본 섬유산업 현장을 방문한 적 있다. 일본은 기능성 섬유와 탄소섬유를 중심으로 고성능·첨단소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기차와 항공산업의 성장, 친환경·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새로운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의류시장에서도 기능성 신소재를 바탕으로 '유니클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일본 섬유산업의 제2의 활황기는 2021년부터 본격화되고 있으며, 고기능·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무서운 성장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와 대학의 전문인력 양성, 기업의 기술 축적이 맞물린 결과다.

우리 섬유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중국산 원사는 이란·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으로부터의 원료 조달과 대규모 생산설비를 기반으로 강한 가격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정세 불안으로 원료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원료가격과 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중국산 원사의 가격 우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일부 품목에서는 국내산과의 가격 격차가 크게 줄어 국내 원사 생산기반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같은 가격의 원료로 공정한 경기가 진행된다면, 우리의 첨단화 설비와 기술혁신으로 해볼 만한 환경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기회로 이어지진 않는다. 좁혀진 격차를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전환에 활용해야 한다.

첫째, 탄소섬유와 아라미드섬유 등 미래 첨단 섬유소재의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확대해야 한다. 섬유는 더 이상 옷만 만드는 소재가 아니다. 미래차와 항공우주, 방산, 의료,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다.

둘째, 원사에서 원단, 염색·가공, 봉제와 패션으로 이어지는 국내 생산 기반을 지켜야 한다. 노후 생산설비를 첨단화하고 AI 기반 생산관리와 품질관리,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한 공정이 무너지면 공급망 전체의 경쟁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 기술과 소재를 세계시장과 연결할 글로벌 브랜드와 선도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산업 생태계를 견인할 글로벌 앵커기업과 연구·인증·사업화를 지원할 앵커기관 유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우수한 소재와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해외 브랜드의 공급자에 머문다면 부가가치를 확보하기 어렵다. 소재 개발부터 디자인, 생산, 유통,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섬유를 버리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자동차 에어백, 타이어 코드지, 항공기 동체, 우주복 등이 모두 섬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섬유가 과거의 산업이 아니라 미래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은 우리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다. 이제는 섬유를 사양산업이 아닌 국가 전략산업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섬유가 아니라 섬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지금이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