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거칠고 투박한 삶이 토해내는 힘

입력 2026-07-23 1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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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모옌 지음/ 필로틱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여느 때처럼 온라인서점을 유랑하던 밤이었다. 선 굵은 캐리커처가 박힌 노란색 표지가 눈에 띄었고, 책날개엔 작가 사진이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 머리숱 적고 각진 얼굴형에 지긋하게 감은 눈을 포착한 모습. 캐리커처는 이렇게 그리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그림에 웃음이 빵 터졌다. 내 경험상 이런 책은 최소한 돈값은 한다. 바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산문집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이다.

"할아버지는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수레에 실은 풀은 절반이나 날아갔지만 수레는 제자리에 있었고 우리도 둑에 박힌 못처럼 버텼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18쪽)

모옌을 생각할 때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이름은 위화다. 산둥성 가오미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모옌과 저장성 항저우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위화는 어떻게 말해도 대척에 선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건은 '문화대혁명'일 터. 모옌은 문화대혁명 광풍 속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짓고 공장에서 일했으며, 위화는 문화혁명의 혼란과 폭력과 무고와 폭로의 시대상을 문학적 자양분으로 삼는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모옌의 『홍가오량 가족』은 장예모 연출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위화의 『인생』 역시 장예모와 손잡고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다. 모옌과 위화는 장예모의 영화 덕에 유명작가로 급부상하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인생'을 기점으로 하락하더니 문화 권력을 쥔 후 중화주의 선봉에 선다.

자전적 성격이 완연한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에서도 유독 강하게 신념을 드러내는 '소란과 진실' 꼭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맞닿아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어째서 자신의 이해관계나 가족과 상관없는 일에는 정의롭고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인 양 굴다가, 막상 자기 일, 특히 내 자식의 문제가 되면 태도가 돌변해 순식간에 원칙이 사라지는 걸까?" (214쪽)

중국 현대문학의 대모 셰빙신의 일화를 다룬 대목. 빙신의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장이 불러 가보니 남편 머리에서 발끝까지 흰 천이 덮여 있어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말없이 발길 돌린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국수 한 그릇을 삶아 먹은 일에 대해 모옌은 이렇게 말한다. "시부모와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러야 하고, 슬픔에 잠긴 노부모를 위로하며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 자신이 무너져서는 안 되었다." (중략)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고 정서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이치에 맞는 디테일이다. 우리 작가들에게 필요한 자질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무릎을 쳤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작가라 불리는데 익숙했던 그가 어느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독자'라는 호칭으로 불렸을 때, 우리의 글쓰기는 언제나 독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납득한 이야기도 무척 의미 있다.

고백하자면 내가 읽은 모옌의 책이라고는 '홍가오량 가족'이 전부다.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를 읽고서야 선명해진 사실. 왜 모옌은 '홍가오량 가족'을 썼는지, 장예모는 왜 데뷔작으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