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될 뻔했죠"…극강 난이도 증시에 전문가들도 당혹

입력 2026-07-23 09: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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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한 달 새 25% 급락…전자·닉스 시총 1319조 증발
급격한 변동성에 전문가들도 혀 내두르는 장세 지속
"펀더멘털 아닌 수급 충격"…이달 말 실적이 반등 분수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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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될 뻔했죠."

상반기 증시가 잘나갈 때 수익률 자랑이 오가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은 요즘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사상 첫 9000대를 넘어 '1만피'를 바라보던 코스피가 두 달 만에 6000대로 주저앉으면서 상반기 벌어둔 수익을 고스란히 반납한 투자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방향을 트는 변동성에 개인 투자자는 물론 전문가 집단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22일 전 거래일 대비 0.74% 오른 6797.70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만 보면 강보합이지만 장 중 흐름은 롤러코스터였다. 미국발 반도체 투자 낙관론에 4.51% 급등한 7052.09로 출발해 장 중 7166선까지 치솟았지만 오후 2시 이후 기관이 매도폭을 키우면서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개장 직후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하루 안에 5% 넘게 올랐다가 강보합으로 주저앉는 장세가 지금 증시의 현주소다.

변동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 상반기 코스피 일평균 변동률은 3.3%로,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코스피 사이드카는 38차례, 서킷브레이커는 7차례 발동됐다. 코스피·코스닥을 합치면 사이드카만 57회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기록(45회)을 이미 넘어섰다. 서킷브레이커 역대 발동 사례의 절반 이상이 올 상반기에 몰렸다.

낙폭도 가팔랐다. 코스피는 지난달 22일 9100대에서 이달 14일 6800대까지 약 4주 만에 25.4% 빠졌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1881조원 증발했다.

시총 감소분 가운데 삼성전자(543조원)와 SK하이닉스(776조원)가 1319조원으로 70%를 차지했다. 두 종목 주가는 각각 26%, 37% 내렸다. 주가 상승률의 두 배를 좇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개인의 손실은 더 커 같은 기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수익률은 각각 -40%, -49%에 달했다.

시장이 얼어붙자 거래 자체가 말라붙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국내 증시 거래대금은 46조6199억원으로, 5월(106조1000억원)과 지난달(99조3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투자자예탁금도 지난달 4일 139조6948억원에서 이달 21일 106조6929억원으로 33조원 넘게 줄었다. 하락 때마다 저가 매수로 외국인 물량을 받아내던 개인마저 지쳐 현금 확보에 나선 결과다. 실제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99조원어치를 순매수했던 개인은 지난 14일 하루에만 4조1410억원을 팔아치웠다.

이런 장세는 전문가들에게도 낯설다. 중형 증권사 한 PB는 "상반기 주식시장 난이도가 1, 2였다면 지금은 13, 14 정도"라고 평가하면서 "전문가 집단인 PB들도 처음 경험하는 장세여서 처참한 기분 속에 그야말로 버티고 있는 건 일반 투자자와 다르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히 코스닥 종목을 발로 뛰며 발굴해온 PB들의 타격이 컸다. 기업 탐방을 다니며 중소형 성장주를 담아온 이들이 정작 반도체 대형주만 오르는 장세에 소외되면서 손실을 키웠기 때문이다. 코스닥은 대형 반도체주로 자금이 쏠리는 사이 유동성이 빠르게 말라붙었다. 지난 20일 코스닥 거래대금은 4조8323억원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5월 27일(15조2784억원)과 비교해 두 달도 안 돼 3분의 1 토막이 났다.

운용사 투자 일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던 PB들도 최근 우량 대형주가 바닥이라는 판단에 개별 주식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극심한 변동성 앞에서는 고개를 젓는다. 대형 증권사 한 PB는 "밸류에이션만 놓고 보면 안 살 이유가 없는 종목들을 정말 오랜 만에 거래했다"면서도 "워낙 등락이 심하다 보니 담고 나서도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7월 초 현금 비중을 대폭 늘려둔 PB들도 "이대로 상승장세가 끝나버리면 실탄을 쥐고도 쓸 데가 없다"며 씁쓸해하는 분위기다.

급락의 배경으로는 인공지능(AI)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기계적 매도 구조가 동시에 지목된다. 반도체 업황이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아웃' 우려가 커진 가운데 주가가 급락하면 레버리지 ETF가 기계적으로 물량을 쏟아내며 낙폭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3일 '블랙먼데이' 당시 기관 순매도액의 약 62%가 ETF 리밸런싱에서 나온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을 펀더멘털 훼손이 아닌 수급 충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달 들어 D램 수출 단가가 전월 대비 21.8% 오르는 등 반도체 업황 자체는 견조하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낙폭이 과도해 과매도 영역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고점 대비 25% 넘는 하락은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연준 긴축기에 버금가는 충격"이라며 "주가수익비율(PER)도 금융위기 수준까지 낮아진 만큼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는 바닥권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JP모건도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1만2500포인트로 유지하며 "이번 조정은 레버리지 ETF가 증폭시킨 것으로, 자가 치유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건은 이달 말이다. 미국 메타와 아마존 등 빅테크의 실적 발표에서 알파벳에 이어 AI 설비투자(CAPEX) 확대 기조가 재확인되고,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2분기 실적이 뒷받침된다면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빠르게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현장의 PB들도 지친 기색 속에서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대형사 한 지점장은 "이번 급락까지 반영한 하우스 뷰도 반도체가 연말이면 전고점을 우습게 회복할 것이란 쪽"이라며 "단일종목 레버리지도 제도 보완이 맞물리면 뒤엉킨 수급도 점차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