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로 말 많은데 또…"증거가치 낮다"며 도박장 단속 영상 없앤 경찰

입력 2026-07-19 16:19:50 수정 2026-07-19 17: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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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들 고성·욕설 등이 대부분…수사 자료로 활용할 필요 없어 파기"

법원 자료 사진.
법원 자료 사진.

경찰이 도박장 단속 과정에서 자체 판단으로 삭제한 채증 영상이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줄 자료라고 주장하며 재판을 이어온 남성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19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권소영 판사는 지난 9일 도박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외국인인 A씨는 2023년 12월 서울 노원구의 한 불법 '텍사스 홀덤' 도박장에서 90만원 상당의 칩을 교환한 뒤 도박을 한 혐의로 서울 중랑경찰서에 입건돼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미 삼아 칩을 교환하긴 했으나 실제 게임 테이블에 앉아 도박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속 당시 게임 테이블 건너편 흡연실 인근에 있던 그는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수사관들의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A씨는 경찰이 촬영한 채증 영상에 자신이 도박에 참여하지 않은 모습이 담겼을 것으로 보고 이를 재판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 영상 제공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A씨가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경찰로부터 "채증 즉시 영상을 파기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경찰이 공개한 '메모 보고서'에는 "도박 행위자들의 일체 자백을 통해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며 "영상은 증거로서 가치보다 피의자들의 고성과 욕설 등이 대부분을 차지해 수사 자료로 활용할 필요성이 없어 전부 파기했다"고 적혀 있었다.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당시 영상에 도박하는 장면이 찍히지 않았기에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영상이 없어도 도박장 직원 진술이나 칩 교환 내역 등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경찰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A씨가 실제로 도박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도박장 직원의 진술뿐이었고, 해당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도박장 직원들이 법정에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기존 진술을 번복한 점이 무죄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판에서는 A씨가 당시 휴대전화로 촬영한 짧은 영상이 증거로 채택됐다. 변호인이 이 영상을 제시하며 신문을 이어가자 직원들은 앞선 진술과 다른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연합뉴스에 "채증 영상만 있었어도 2년 동안 재판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라며 "중요한 증거를 왜 삭제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이 단속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삭제한 조치를 두고 수사 현장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일부 수사관들은 "현실적으로 모든 증거물을 제출할 순 없어 삭제 판단도 수사관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경찰이 현장에서 직접 확보한 채증 영상을 즉시 삭제하고 법원에도 제출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 입장에선 처벌하기 위한 송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사건과 관련된 모든 증거를 제출해야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거나 판사가 재판할 때 정황을 객관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의로 증거를 삭제하고 없애는 것은 경찰이 권리 행사의 범위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원칙적으로 채증 영상이 멸실·훼손되는 상황은 적절하지 않다"며 "범죄와 관련이 있는지 판단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재판관이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