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구 칼럼] 메마른 땅은 내버려두고 농부가 게으른 탓이라고?

입력 2026-07-07 06:3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홍성구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성구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성구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재명 정부의 지역거점대학 정책, 소위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둘러싸고 논란과 갈등이 적지 않다. 핵심은 교육부의 교원인사제도 혁신 요구이다. 각 대학은 교수 평가 기준을 최소한 서울 주요 사립대 수준에 맞추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경북대를 비롯한 거점국립대 교수들이 반발하고 있다.

일부 여론은 몹시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다. 인사 혁신 없는 지원은 '나눠 먹기' 식 심폐소생술일 뿐이고, 이에 비판적인 국립대 교수 사회를 향해 '철밥통 지키기'라고 매도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모두 본질을 알고 있다. 지역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은 SCI급 이상 국제학술지 논문이 많지 않은 '게으른 교수'를 거르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수립이래 지난 80년간 나라를 살리기 위한 응급 처방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탓이다. 과거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해야 했던 성장 중심의 시대에 학생과 기업, 문화 인프라 등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된 구조 속에서도 지역대학은 묵묵히 버텨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서울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느냐"고 질책하는 것은 메마른 땅은 내버려두고 농부의 게으름을 탓하는 꼴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피할 수 없는 시대 과제이다. 응급 처방으로 심장을 살렸으면 다음은 신체를 고루 건강하게 만들 근원적인 처방을 내야 한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이름부터 유감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산업 기반을 무시하고, 서울대 모델을 전국에 복제하는 방식을 연상케 한다. 인사혁신 역시 서울 사립대를 따라 하라고 한다. 획일화는 선진국을 빨리 따라잡아야 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나라가 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폭넓은 다양성과 세밀한 전문성이 어우러질 때 만들어진다. 대학 경쟁력의 기준도 지나치게 민간 기관의 세계대학평가 순위에 맞춰져 있다. 국제학술지 논문 편수가 많으면 대학 경쟁력도 높다는 생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논문은 학문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주요 수단이지만, 그 영향력이 항상 즉각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초연구와 장기 연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기초연구와 장기 연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코로나19 백신의 핵심 기술인 mRNA 연구로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카탈린 카리코 교수는 1990년대 중반 대학의 연구 중단 압박과 강등, 급여 삭감을 감수하면서 연구를 지속했다. 2005년에야 처음 관련 연구를 발표하였지만, 다른 연구자나 제약회사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일본 교토대학은 최근 "연구자가 자유롭게 뛰어난 지식 창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라고 선언하고, '시간이 지나 의미가 드러나는 연구(maturing excellence)'라는 개념을 연구평가 체계에 포함시켰다. 10여 명이 넘는 노벨상과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학의 학술 전통을 명문화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고문헌을 디지털화하고 번역하는 한국학 연구는 국제학술지 논문을 양산하지는 못하지만, 인문학 연구의 핵심 인프라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기후변동, 감염병, 그리고 AI와 언어모델 연구의 원천 데이터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당연히 교수의 연구력이 대학 경쟁력의 핵심이다. 문제는 무엇으로 연구력을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지금처럼 국제학술지 논문 중심이면 당장 돈이 되는 분야만 살아남고, 기초학문과 장기 연구, 지역학은 위축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지역거점국립대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공공재이다.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국립대 병원과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 사범대의 가치를 국제학술지 논문 편수로 평가하는 세계대학평가의 순위가 대변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단순 추격형 성장 전략을 넘어설 때가 지났다. 대학개혁에서도 양적 경쟁을 강화하는 방식의 타성을 버려야 한다. 이제 우리도 메마른 땅에 물길을 낼 여유 있는 나라가 되었다. 물길이 열리면 누가 뭐라기 전에 농부가 먼저 신명이 나서 새벽마다 논밭으로 나설 것이다.